삶의 낙(樂)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나는 화투에 빠진 적이 있었다. 뭐, 본격적인 노름은 아니었지만, 전라도에서 많이 하는 "삼봉"이라는 화투를 매우 즐겼었다. 한 겨울 방학 때는 거의 삼봉으로 밤을 지새고 시간을 보냈었다. 삼봉은 나에게 삶의 낙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잠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하루 22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잔 적도 있었다. (물론 방학 때...) 너무 오래 자고나면 잠 때문에 피곤해서 다시 잠들고, 밥도 한 끼만 먹으면서 다시 자고... 삶이 잠으로만 가득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경험했다.
오락에 빠진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작은형을 따라 아침에 전자오락실에 갔다가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에 전자오락은 내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재수시절에는 하루에 세 시간씩 꼬박꼬박 시간을 투자한 결과 많은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 했었다. 심지어 대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서울 봉천동 여관에 머물렀을 때, 시험 전날 12시까지 근처 오락실에서 친구와 오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9년 겨울에는 당시 처음 나왔던 컴퓨터 게임인 삼국지를 하면서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일념하에 일주일을 아무 것도 안하고 잠도 거의 안 자고 게임에만 몰두하여 폐인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게임은 내 삶의 소일거리였고, 때로는 큰 재미였고 의미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신문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열심히 보던 동아일보를 첫장 첫 단어부터 끝장 끝 단어까지 모두 읽었다. 광고, 사설, 뉴스 상관 없이 모두 읽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신문 때문에 공부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서 개인상담시간에 신문을 보는 법(사설과 헤드라인 중심으로 보는 법)을 알려줬을 정도이다.
또 중학교 때 언젠가는 TV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온종일 TV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만 나왔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나고, 채널은 3개(광주는..) 밖에 없었다. 나는 모든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꿰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TV보는 재미에 몰두했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TV를 통해서만 재미를 느꼈다.
한 때는 (보는) 스포츠에 한참 몰두했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모든 종목의 스포츠 중계를 다 봤던 것 같다. 야구, 축구, 농구는 물론 육상, 핸드볼, 양궁, 수영, 하키, 역도, 유도 등등 모든 종목(격투기만 빼고)의 중계를 보면서 즐겼다.

어린시절...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참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는 완전히 단절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 내 삶에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리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고, 복음 안에서 주어지는 진정한 기쁨, 구원의 기쁨, 말씀의 기쁨, 믿음의 지체들과 나누는 기쁨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요즘 내 삶에는 TV는 거의 사라졌다. 일 주일에 두 세번 CNN 뉴스를 잠깐 볼 때를 제외하고는 TV를 켤 일이 없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보는 것 외에 비디오는 거의 보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어린시절 향수에 젖어 그 때를 생각하며 전자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을 가끔씩 하곤 하지만, 더 이상 의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신문을 열심히 보지만, 그것은 말씀을 준비할 자료를 얻거나,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한 것, 혹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술, 담배 등은 아예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의미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을 더 알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며 이 세상에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가는 데도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다른 의미없는 것들에 내 인생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내 삶은 말씀과 공부와 교제로 가득 차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다른 뭔가가 전혀 필요가 없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진정으로 맛본다면, 세상의 돈도, 명예도, 직위도, 오락도, 그 무엇도 그 앞에서는 의미를 잃고 만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 그것은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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