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28. 작성)
2002년 7월 초에 미국으로 유학온지 2주일 정도 지난 다음의 일이다. 택사스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아파트에 박혀있다가 초저녁 즈음 돼서 너무 답답해 집사람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이에 있는 수퍼에 가서 간단한 음식을 사오기로 했다. 당시에는 차를 아직 구입하지 않은 시점이라서 수퍼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입지 조건이 너무 좋아서 수퍼가 코앞에 있는 편이었는데도 걸어서 30분 정도 걸어가야 수퍼에 갈 수 있었다. 초저녁이라 좀 선선할 줄 알았는데, 왠걸.... 오히려 한 낮보다 더 더운 것이었다. 칭얼대는 두 아이를 대리고 그 더운 날씨에 어찌어찌 수퍼까지 갔다.
빵빵한 에어컨으로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그 넓고 넓은 수퍼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와이프는 문 입구 안쪽에서 벽쪽에 있는 광고지들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나는 밖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이프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아줌마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인상을 험악하게 하면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Welcome to America!"라고 으르렁 거리듯이 내뱉으며 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백인 여학생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처럼 보였다) 세 명이 나를 불렀다.
"Wasn't she so rude to you?"
"I don't know. I don't understand what happened..."
"We are sorry, she was so rude. She shouldn't say so."
미국 애들이 보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미국의 문화와 미국인의 사고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인 미국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도대체 왜 그 아줌마가 그리 화가 나 있었고, 나에게 그런식으로 대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911사태 이후에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서, 특히나 조지 부시를 열열히 지지하는 텍사스라는 동네의 특성상 나같은 외국인에 대해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워 졌는지... 아니면 수퍼 안에서의 내 행동이 거슬렸던지 뭐 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 사건을 통해서 본 것은 단순히 한 아줌마가 나에 대해서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시 그 아줌마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미국 태생의 미국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설사 내가 한국말을 쓰는 것을 들었다 하더라도 나의 국적이 미국인지 아니면 외국인지 그녀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문제는 그 아줌마가 나의 생김새를 보고 당연히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을 했고, 그 판단하에 "Welcome to America!"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것은 미국 백인들의 마음 속에 아직도 유색인종은 법적으로는 미국인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미국인이 아니며 따라서 유색인종은 미국의 핵심부에 자리 잡을 수 없다는 의식을 드러내는 사건인 것이다. 미국 사회는 아직도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평가되고 있다. 내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WASP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각 분야 뿐만 아니라 아직도 미국인 스스로의 마음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국에서의 유색인종,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은 자신의 나라에서 영원히 타인으로 대접을 받을 뿐인 것 같다. 자신의 나라에서 주변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런 나라에서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까?
Ronald Takaki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다. 그는 이민 4세이며 그의 조상들이 미국에 정착한지는 100년이 넘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는 실재 미국인이었다. 그가 어느날 학회 참여차 버지니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운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백인이었다. 그는 Takaki교수가 영어를 너무 잘하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택시기사가 물었다. "How long have you been in this country?" Takaki 교수는 자신은 이민 4세대이며 100년 이상 미국에 정착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기사는 말했다. "I was wondering because your English is excellent!" 이 경험은 Takaki교수가 평생을 거쳐 겪어온 자신의 조국에서 이방인으로 대접받는 경험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Somehow I did not look "American" to him; my eyes and complexion looked fo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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