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아내의 저축...

(2006.03.01에 다른 곳에 작성한 글)

저녁식사를 하러 집에 갔다. 식사를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중에 돈문제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을 형편이다보니 통장의 잔고와 신용카드 사용이 항상 체크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로부터 나 몰래 현금 잔금을 모은 것이 500불 가량 된다는 말을 들었다. 가난한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로서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는 비상 시에 대비할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내로부터 500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래전 아내와 만나서 데이트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우리였지만 캠퍼스의 다른 지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는 "밖"에서 주로 만났다. 그러다 보니 데이트 자금이 좀 필요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정을 너무 잘 아는 아내였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도 특별히 돈을 벌고 있지 않고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타서 쓰는 상황이라 그리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그녀가 통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나가는 말로... 초등학교때부터 한푼 두푼 모았다던 그 통장. 그 때까지 쓰지 않고 있었던 고사리 손으로 모아 왔던 그 통장. 이제 그 돈이 아내의 데이트 자금으로 조금씩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함. 고마움. 서운함. 안타까움. 사랑스러움. 등등의 감정이 당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하는 아내로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의 모습이 겹쳐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 고마움... 그리고 그 소중한 추억이 담긴 통장을 나 때문에 써야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전에 학교 다닐 때 김소운씨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집이 있었다. 당시에는 참 욕도 많이 얻어 먹었던 내용이었다. 진짜 가난이 담겨있지 않는 동화같은 내용이라는 둥. 김소운씨의 아들이 사기죄로 감옥살이를 하는 것을 빗대어 가난에 대한 교육을 못시켰다는 둥...
하지만 여러 비판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가난을 이겨내는 부부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하나같이 아내를 가난으로 이끈 남편들의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그 가난 속에서도 남편을 존중하과 의지하는 아내들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내에 대해서 수년전 데이트 하던 시절에 느꼈던 그 감정, 그리고 김소운씨의 글에 등장하는 가난한 남편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내... 항상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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