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very good, Kwangjin!"
방금 전에 한 교수에게서 받은 메일의 첫 문장이다.
내가 쓰고 있는 논문은 미국학과 역사학 교수들 뿐만 아니라, 미국문학과 경영학과의 교수들의 도움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논문이다. 미국학의 연구 방법론의 특징이 interdisciplinary이기 때문에 여러 전공을 이용하여 하나의 현상을 설명해내야 한다.
여러 전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자신없는 전공이 경영학이다. 학부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전공이다. 2003년 가을학기 때, 경영대 대학원 수업인 Organizational Behavior를 딱 한 번 들었을 뿐이고, 그 때 교수였던 한 교수를 내 논문 committee에 초대하여 위원이 된 후, 그분이 준 방대한 양의 논문을 혼자 독학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교수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가며 공부한 것이었지만, 워낙 기초가 없고, 특히 통계가 핵심인 그 전공에서 통계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공부를 해야했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문제는 내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 바로 경영학의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 경영학의 이론을 활용하여 문학 작품들을 분석하고, 그 분석과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결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 논문의 큰 방향이다. 만약 이론이 문제가 생기면 논문은 완전히 와해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어떤 미국학자도 이런 시도를 해 본적이 없다. 미국학과 내의 교수들이 내 논문의 방향을 보면서, 만약 성공한다면 true interdisciplinary한 논문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런 자신없는 분야,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분야의 여러 이론이 내 논문에 필요한데, 그 중 하나의 분야인 "What is organization?"이라는 부분의 논문과 책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한 후 내 이론을 거기서 도출해 냈다. 글의 길이는 더블스페이스의 12포인트로 네장 반. 어찌보면 마음먹고 쓴다면 반나절이면 쓸 수 있을 것 같은 짧은 이 글을 만들어 내는데, 작년 가을과 올해 초 몇 달이 소요되었다. 알지 못하는 분야를 이해해야 했고, 읽어야 했고,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문제를 지적해야 했고, 또한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마친 후, 교수에게 그 짧은 글을 보내서 feedback을 부탁했다. 그 교수는 경영학 내에서 전 미국에서 유명한 학자이고, 그 분야의 최고 저널의 editor이기도 한 분이다. 오래 공부하긴 했지만, 문외한인 내가 정리한 글을 그 대학자에게 읽게 한다는 것이 부담이 매우 크긴 했지만, 그래도 도움을 받을 분이 그분 밖에 없어서 용기를 내어 글을 보냈다.
약 3주가 지난 후... 오늘 그 글에 대한 답변을 받은 것이다.
"This is very good, Kwangjin! I think it's entirely appropriate ...."
교수로부터 답을 기다렸지만 (그분은 현재 경영대의 associate dean으로 일하기 때문에 정말 바쁜 분이다.) 답이 없어서, 일단 더 기다리지 않고 그 이론을 작품 분석에 적용해 나가기로 하고 글을 쓰고 있었다. 만약 내 글에 대해 딴지가 걸리고 수정을 많이 해야 한다면, 그 동안 분석해 나갔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해야하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도리가 없어서 글을 계속 써 내려갔다. 그런데, 오늘의 답장은 내가 아무런 수정이 없이 그대로 진행을 시켜 나가도 된다는 싸인인 것이다.
참 기뻤다...
이 교수를 만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Oral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논문 Committee를 구성하는 과정, 논문을 쓰는 과정...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인도하셔서 나로 하여금 이 논문을 마칠 수 있도록 주장하시는 것을 본다.
솔직히... 나는 너무나 거대한 이 논문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거나 끝마칠 능력이 없는 자이다.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가 그것을 너무 잘 안다. 기적이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마칠 수 없는 이 논문... 그런데 지금까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며,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도록 인도하신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나로 하여금 그냥 가게 하시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논문을 쓰는 이 과정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을 보는 과정이다. 참으로 dynamic한 인생의 경험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저 그분의 능력을 즐기는 무능력한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있기를 원하시는 그 자리에 있으련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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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형.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뻔한 연구는 위험이 별로 없지만, 새로운 시도들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극도로 미워하거나.)
하지만, 새로운 시도로 논문을 써서 일단 툭 던져놓고, 가슴조마조마하며 반응을 지켜보는 그런 설레임이, 뻔한 논문 지루하게 써가며, 읽는 이도 지루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것 같습니다.
형이 통계학이 어렵다고 말씀하신 부분에서는, 참
당장 텍사스로 달려가서,
같이 오렌지쥬스에 마른 새우를 안주삼으며
하룻밤에 쫙 정리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합니다만...
좋은 소식 들어서 기쁩니다.
필라에서 ㄱ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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