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분의 의지.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28)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던 그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특성은 철저한 수동성이었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되던 감람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호하신 적이 없고, 더구나 이적을 배푸시지 않았다(말곰의 귀를 고쳐주신 것을 제외하고는). 체포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예수님은 세상의 악과 권력에 철저하게 희생당한, 마치 아무 힘이 없이 맹수의 공격에 당하는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이셨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십자가 사건을 실패한 사역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악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 하나님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사건인 것이다. 마치 가룟인 유다처럼, 그 악,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창조주이신 예수님에게 해를 가하기를 갈망했고, 실재로 행동에 옮겼다. 하지만 예수님 한 분께 쏟아부은 그들의 악으로(혹은 그 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극히 놀랍고, 지극히 선하신 일을 이루신다. 그것도 철저히 그분의 계획에 의해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전, 예수님은 당신 편에서 이루어져야할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면밀히 점검하셨다("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계획하신 일들이었고, 성경을 통해 계시된 것들이었다. 당신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신 후, 성경에 예언된 대로(다시 말하면 당신 자신의 계획 대로)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을 하신다.

십자가라는 비극의 자리는 참으로 paradox한 자리이다. 그것은 최고의 범죄자들의 자리였지만, 가장 고귀한 하나님이 달리셨던 자리였고, 철저한 수동성을 보이신 예수님에 의해 그 어떤 사건보다도 적극적으로 기획된 사건이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의 자리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자리이고, 완전한 실패자의 자리이면서도 성경 역사상 최고의 승리의 자리이다.

믿음의 길을 가면서, 때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주인이신가, 그분이 내 삶에 관심이라도 있으신가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라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제한된 시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 눈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그저 아무런 힘없이, 능력없이 끌려가는 죄수일 뿐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 더욱 더 주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신뢰. 그 믿음과 신뢰가 강해져 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시야를 조금씩 획득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마치 엘리사가 천군천사가 자신을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본 것처럼, 그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삶이고, 그것이 믿는 자만이 누리는 신비스러운 비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인 오늘. 슬픔과 기쁨, 고통과 쾌락, 수치와 영광, 탄식과 감사가 공존한다.

참으로 기이한 날이다. 하나님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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