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거듭남을 경험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양자로 입양된다. 창조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특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공의로우신 성품, 그리고 그분의 사랑받는 자로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 그분께 다시 반역으로 나아갈 때,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나를 그냥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나를 징계하신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아무리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채찍이라 할지라도, 그 징계는 고통스럽다. 때로는 그것이 죽을 것 같은 고통, 극심한 고통이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나고 생각될 정도로...
나는 최근에 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있는 것인지를 묵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나에게는 내가 죽는 고통, 아니 한 번 죽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죽음을 맛보는 고통이 있었다. 어느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그 고통의 원인이 10년이 훨씬 넘은 옛날에 지었던 죄와 약 6년 전에 지었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았다. 그 죄에 대해서 나는 회개를 했지만 그 죄의 결과를 지금 물으시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죄로부터 아직 완전하게 돌이키지 못했음을 그 징계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아직 더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할 것들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셨다. 나의 내면 깊숙이 박혀 있어서 어지간 해서는 절대로 드러날 수 없는 근본적인 죄악을 그 채찍질을 통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하시고, 내 스스로도 속아서 처리된 것으로 여겼던 그 죄악들을 드러내시면서 나에게 보다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 하나님의 채찍--아직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징계이지만--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그 채찍에 묻어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을 읽게 된다. 이제는 나에게 가해지는 그 고통보다도 그 매를 드셔야 했던 내 아버지의 마음, 그 찢어지는 아픔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매를 드셔야 했던 내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그 전에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비밀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쓰셔야 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 자리에서는, 예전에는 그냥 넘어 갔던 그 죄들을 가지고는 더 이상 쓰실 수 없기 때문에, 나를 더 은혜의 자리로, 성숙의 자리로 인도하셔야 했기 때문에, 나를 향하여 그렇게 뒤늦은 이 때에 채찍을 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채찍을 통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느낄 때, 그 채찍은 아프긴 하지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채찍을 통해 내 죄악된 자아가 죽어가며, 반면에 내 안에서 영적인 새 살들이 돋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신비이고, 환희이고, 감격이다.
나를 징계하시는 나의 아버지... 나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감사... 감사... 감사... 그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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