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결혼하기 전, 교제하던 지금의 아내에게 한 번 정도 내 딴에는 심각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내는 그 말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믿음을 가지고 나서, 자발적으로 가난하면서도 의미 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선배들을 보고, 그리고 "가난의 영성"을 접하고는 나는 가난한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는 추구하며 살게 되었다.
가난하기로 작정하면, 세상에 얽메이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할 것들을 조금 적게 하거나 못하는 것에 대해서 뻔뻔스럽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가난은 그리 힘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이 자유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자유라는 속박에 얽메여서 허덕거린다. 그것이 돈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현 주소이다.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고, 조금 고상한 삶을 포기한다면, 인생은 훨씬 자유로와지고, 세상은 살 만 하다.
가난하게 사는 삶의 백미는,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더 긴밀해진다는 것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단순히 돈에 쪼들려 살면서 해야할 것을 아무것도 못하면서 산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내 가정의 모든 필요를 내가 직접 모두 마련하고 장만한다는 욕심과 책임에서 벗어나서 전능하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다.
돈이 많을 때는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 살면,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을 기도하게 된다. 부족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작은 공급에도 감사하게 되고, 그분이 내 삶에 개입하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기도 응답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며, 내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살 수 있다.
가난은 내 자신을 믿고 사는 불신앙에서 나를 탈출시키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붙들고 의지하는 믿음의 삶으로 인도한다. 삶의 지극히 냉혹한 현실 가운데서 가난한 자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그 냉혹함을 녹이는 따뜻한 불이며, 그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믿음을 견지하게 된다.
그러한 가난은 이 세상에 보화를 쌓으려는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늘의 보화를 쌓으려는 거룩한 욕심을 가질 때, 나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다가온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 놓을 수 있고,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고백 가운데서 나는 내 소유 뿐만 아니라 내 존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인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피조물인 내가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영광은, 하나님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자발적인 가난은... 내 삶을 통해 그 분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나를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돌리는 삶으로 인도한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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