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어온 나에 대한 말은 "융통성이 없다"와 "현실을 잘 모른다"는 말이다. 세상적으로 볼 때, 그 평가는 정확히 맞다. 나는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융통성이 적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내 소망은 내가 철저하게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평생을 남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 '융통성'이란 너무나 많은 경우 정도를 벗어나는 것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고 정직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해 주는 것도 융통성이고, 법과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도 융통성에 포함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라고 적당히 잘 봐주는 것도 융통성에 해당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은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융통성이 없는, 법과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현실주의도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현실주의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그 현실을 전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전부인 세계관이 바로 현실주의이다. 예를 들어 현실주의적으로 볼 때, 내가 청년부를 섬기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미국에 박사학위를 위해서 왔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도 8년 정도 걸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시간을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보내는 그 많은 시간은 사치이고, 이상주의자의 허영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부분을 봐도 그렇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한 학기, 혹은 일 년을 생활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돈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벌어야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벌 궁리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현실주의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내 유학 생활은 반드시 공부와 돈벌이에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도 그 현실을 감당하기 버겁다.

내 삶은 그 현실주의적인 판단과 거리가 멀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공부 외의 것, 돈버는 것 외의 것에 사용되고 있다. 유학생으로서 불필요한 사치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내가 내 눈으로보고 내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는 그 세계만이 현실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정의한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그리스도는 모든 판단에서 제외된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나의 주인이시다. 그런데 그 분, 그 살아계시는 분이 모든 판단에서 제외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현실주의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관점인 것이다.

진정한 현실주의는 진리에 기반을 두는 인식론이다. 진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기반을 둔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이 진리되신다. 내 삶의 인식이 그 예수님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가른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과, 내 경험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 인식을 현실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변의 것들이다.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분의 뜻이 있다. 그분께서 내 삶에 원하시는 그 뜻을 내 실제 삶의 중심에 두고 그것에 기반해서 현실을 인식해 나갈 때, 그것은 진리에 기반을 둔 현실 인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현실주의자의 삶이다. 따라서 현실주의는 물리적인 세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까지도 아우르는 폭넓은 현실 인식이다.

내 주인이신 그분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내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내 삶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인지 분명해진다. 내가 비록 가난한 유학생이지만, 비록 내 능력에 넘치는 공부량과 해야할 일들에 허덕이는 자이지만, 그것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 삶을 드리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삶인 이유가 그것이다. 그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마지막이 있고, 그 마지막 날에 내 주인이신 그분 앞에서 내 인생을 계수하는 그날이 있음을 인지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오는 결론인 것이다.

나는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현실주의자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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