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거 알아요?

(2005.12.30에 쓴 글)

늘 그렇듯이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눈을 부비면서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있었다. 급한 대로 혼자 밥을 먹은 것이다...
하연이가 뭘 들고 와서 열심히 적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뭔가 하는 호기심에 들여다 봤더니 영어로 단어를 적는 작은 책이었다. 그 책에서 하연이가 적어야 할 내용은 각 동물들의 새끼 이름을 적는 것이었다.

하연이가 물었다.

"아빠! 아기 sheep은 뭐라고 불러요?"
(자신있게...) "그건 Lamb이지.. L-A-M-B!"

하연이는 불러주는 철자를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리고 나서 묻는다.

"아빠! 아기 cow는 뭐라고 불러요?"
(역시 자신있게...)"그건 Calf라고 불러.. C-A-L-F!"

'아빠는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하는 듯 이번에도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리고 나서 묻는다.

"아빠! 아기 horse는 뭐라고 불러요?"
"......"
"예? 뭐라고 불러요~~~?"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그 때 애 엄마가 하연이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다른 교재를 들고 와서 보여준다. 하연이 왈..

"Foal이었지! F-O-A-L..."

일단 자존심이 구겨졌다.. 다음 번 것은 잘 하리라... 하연이가 또 묻는다..

"아기 Duck는 뭐예요?"
"응~~~ Duckling이지... D-U-C-K-L-I-N-G!"

여기서 자존심을 약간 회복... 이 여세로 몰고 가기로 작정..

"아빠! 아기 pig는 뭐예요?"

약간 멈칫... 생각.. 그리고 나서..

"Piglet이야.. P-I-G-L-E-T-T-E!"

말해 놓고 뭔가 좀 이상하다.. 그래서 밥먹다 말고 영어 사전을 찾았다.. 흐이구... 철자가 틀렸다..

"하연아! 아빠가 틀렸네... 맨 끝에 있는 T-E를 빼야겠다... 그리고 piggy도 같은 뜻이네..."

이제는 밥을 다 먹고 일하러 갈 생각도 않고 하연이가 들여다 보는 책을 같이 봤다.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지 뭐..'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런데... 거기 나온 그림들을 보내 기가 팍 죽었다... 토끼, 염소, 칠면조 등등...
'새끼 토끼를 영어로 뭐라더라? 새끼 칠면조는?'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는 영어를 잘한다고 항상 생각해온 하연이 앞에서 끝내 버벅대면서 "아빠도 모르겠다... 나중에 사전 찾아서 알려줄께!"하고 항복을 선언하고 서둘러서 일하러 나갔다.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영어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고, 지금까지 원어민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누구에게 주눅들어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하연이가 보는 작은 책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하연이에게서 영어를 배울 날이 그리 멀지 않았나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