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매일 아침.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도서관의 내 방으로 들어 와서 가장 처음하는 것은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이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곳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종된 자로서의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뜻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내가 청년부 부장으로 섬기면서 처음으로 전했던 말씀이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종된 자세로 있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고, 각오였다.
요즘은 기도를 한 뒤에 컴퓨터를 켜면 바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찬양이 나온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내 삶의 가장 큰 화두는 "종됨"이다. 그분께 완전한 종이 되고 싶은 열망이 나에게 가득하다. 무엇을 명하시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만 하다면, 군소리 없이, 두 말 없이, 순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그 모습 그대로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소망이 나에게 있다.
그런데...
최근 언제부터인가 그 종됨의 바른 자세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청년부의 부장으로 섬기는 것을 분명히 잘 앎에도 불구하고, 나 같이 부족하고 자격없는 자를 굳이 그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내 믿음의 동역자들,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신뢰하는 동역자들을 하나씩 둘씩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것을 보면서, 내 속 깊은 곳에서 외로와 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것에 명백하게 항거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
종이라고 감정이 없겠는가? 종이라고 자신의 생각과 소망이 없겠는가? 하지만, 진정한 종이라면, 주인의 마음과 주인의 계획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고, 완전히 따르는 자이다.
요즘... 몇 가지 다른 것들과 함께, 내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흔들리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내가 어떤 자인지를 잘 보여준다. 말과 수사와 스스로의 생각이 어떻든지간에,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여전히 범죄하고 있는 자인 것이다.
사실 그것 또한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을 느낀다. 아예 모른다면, 원망하고 말텐데...
오늘 아침. 이렇게 완악하고 부족한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QT 찬송을 통해서 위로하신다.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란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때 불쌍히여겨 구원해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완악한 종과 자비로우신 주인... 나에게 다가 오셔서 토닥거리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
언제나 나는 그 자비로우신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합당한 종의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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