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토요일...
일반적으로 가장 한가한 날...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바쁜 날이다.
나는 아침 7시 30분에 있는 교회 목자모임 참석을 위해 일찍 준비해 나가야 하고, 목자모임 이후에는 교회에서 예배 말씀 준비에 전념하며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토요예배에 참석하여 온 에너지를 다 쏟아 말씀을 전하고, 집에 오면 보통 9시 30분 정도 된다.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 있고, 긴장된 생활을 하다가 집에 오면, 피곤함을 느낀다.
아내는 아이들을 아침식사를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아침에 있는 한글학교 교사모임에 참석, 그 후에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이, 집에 올 때 즈음이면 목이 많이 쉬어 있는 것을 본다. 오후에 잠깐 집에 들렀다 5시부터 있는 청년부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모임을 인도하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나와 같이 집에 돌아간다.

토요일이 이렇게 바쁘다보니 집에 올 때 즈음이면 서로가 지쳐 있을 때가 많다. 집에 돌아 오면, 바로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침에 치우지 못한 것들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이 남아 있다. 돌아보건데, 거의 항상 이 일은 아내의 일이었다. 나도 피곤하고 지친 것은 사실이지만, 아내도 나 못지 않게 힘들텐데, 왜 이 일이 꼭 아내가 해야하는 일로만 여겨졌었는지... 똘똘뭉친 내 이기적인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아내가 유난히 힘들어하며, 집에 돌아오자 마자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나도 대충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을텐데, 우연히 그날 아침에 못다한 설거지가 눈에 들왔다. 순간적으로 마음 가운데 갈등이 생겼다. 피곤한 육신에 빨리 가서 자고 싶은 마음과, 내가 지금 이것을 그냥 지나가면 아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서로 충돌한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날 나는 설거지를 해 놓고 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있었던 마음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을 극복하고 설거지를 "하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부끄러운 과정이었다. 그 갈등 가운데서 내 마음은 그냥 모른 채 하고 빨리 잠자리에 들고자하는 욕망이 점점 더 강해졌다. 사랑하는 아내, 그것도 많이 피곤해 하는 아내가 그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앞에 두고 아내에 대한 긍휼한 마음에 그 피곤을 이겨내고 내가 설거지를 해야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 외의 다른 생각을 할 것도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 마음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내가" 피곤하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 것이다.
인간의 죄성,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성이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죄성의 크기와 뿌리깊음의 정도는, 내가 결국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는데,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고, 하나님의 말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고 절대자 되신 크신 하나님이 능력 가운데 개입하셔야 가능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같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조차도 순종하지 못하고, 선을 이루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았다. 죄는 나를 언제든지 그렇게 악한 방향으로 끌고가서 기어이 죄를 짓고야 말도록 나를 주장한다. 죄악의 무서운 힘이다.

마귀가 내 이기심을 부추기는 가운데, 나를 이끌고 가고 있을 때, 그 힘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결코 그런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 연약한 그릇인 아내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그를 돕는 것이 내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남편인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내 이기심에 이끌려 무정함과 무관심의 죄악의 직전에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 순종해야겠다는 결단으로 설거지를 시작했고, 마칠 수 있었다.

설거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 하나에서조차 선을 이루지 못하고 악을 도모하는 것이 나의 본성인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섬기라고 보내 주신 내 아내에게조차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죄악된 나를 본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는 악한 인간인 것을 다시 깨닫는다. 반면, 나같은 악한 인간을 자녀삼아 주시고, 끊임없는 반역과 반항 가운데서도, 나를 인내하시고, 신실하게 나를 인도하셔서, 당신 자신의 열심과 성실로 내 안에 선을 창조하시고 이루시고 마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 삶을 통해 맺히는 모든 선한 열매는 바로 그분의 열심과 성실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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