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받고도 그 메시지를 전달해야할 곳이 아니라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한 자.
자신의 불순종으로 배가 침몰하고 모두가 죽게되었지만, 끝끝내 회개하지 않고 차라리 바다에 던져져 죽음을 택할 만큼 반역적인 자.
바다에서 죽었어야 했지만, 고래를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께 감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동일한 인자와 자비로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했을 때, 이를 갈며 하나님께 대들며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함부로 하나님께 망언을 했던 자.
땡볕에서 자신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던 박넝쿨을 벌레로 하여금 죽게하시고, 뜨거운 바람으로 고통을 더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저주하며 대들던 자.
요나는 악한 인간의 표상이다. 그런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설득하시고 훈계하시고 가르치시는 하나님. 요나서를 보면 마치 하나님의 세계에는 요나 한 사람 밖에 없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집중하신다. 요나가 말을 안듣는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메시지를 전하면 되는 것인데, 마치 이스라엘, 아니 이 세상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듯이 집요하게 그에게 그 일을 일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이런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진다. 이해될 듯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바로 그 요나같은 자, 아니 요나보다 더 흉악한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반역적인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를 품으시고 설득하시고 훈계하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마치 이 세상에 귀한 존재는 나 한 사람 밖에 없다는 듯이, 내게 집중하시고, 나를 관용하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나 한 사람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하신 그 사랑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 그 이해될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요나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나서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더 극명히 보여준다. 결국, 다른 모든 성경의 책들처럼, 요나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여주며 잘 보여주는 책이다.
요나의 하나님... 그분은 죄인을 오래 참으시는 분이며, 그 크신 자비와 인자로 죄인을 가슴에 품으시는 창조주이시다. 그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다.
감사.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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