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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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위의 성경 말씀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에 있는 내용 중 일부이다.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로 번역된 표현을 English Standard Version(ESV)에서는 "the governing authorities", 즉 다스리는(통치하는) 권위들이라고 번역했다. 당시 로마에 있던 성도들은 이를 무엇으로 받아들였을까? 당시 로마 황제를 비롯한 정치적 권력자들과 그들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본문은 중세를 지나고 근세에 들어서면서 절대왕정 체제에서 왕권신수설의 근거처럼 활용되었다. 유럽의 절대왕정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통치 권력은 왕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왕권은 입법, 행정, 사법을 모두 아우르는 거의 절대 권력으로 인정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내이 곧 국가다"라는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런 왕이 있는 정치체제인 왕정에서 "귀에 있는 권세들"은 왕권과 그 왕권의 위임을 받아 다스리는 관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 체제에서 우리가 "굴복"해야 할 "위에 있는 권세들"은 누구 혹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부 기독교인이 (물론 누구냐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긴 하지만) 떠받드는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일까? 간단히라도 이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정 체제에 대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근대에 민주공화정을 국가 시스템으로 채택한 최초의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는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후 신생 국가를 설립하면서 정치체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민주공화국을 선택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건국 조상들이 민주공화국을 선택한 데는 왕의 독재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그 뿐만 아니라 무지한 일반 백성들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차후의 문제였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한 사람이 과도한 정치적 권한을 갖는 것이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당시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널리 인정받아왔던 왕권신수설에 기반한 일인 독재 체재인 왕정을 과감히 버리고, 정치적 권력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서 나온다는 사회계약설을 기반으로 민주공화정을 채택했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모든 정치 권력의 현실 구현(embodiment)은 한 인간인 왕이 아니라, 국민의 합의가 명문화된 헌법을 통해 이루지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절대왕정 시대의 왕/황제 자리에 지금은 헌법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헌법은 국민 합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합의가 변경되면 그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 조상들은 헌법을 절대적인 위치에 두었고(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미국 국민들에게 가장 신성한 문서는 헌법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아래에 종속시켰다. 그 헌법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크게 세 개의 권력을 분산해서 배치했는데, 그것이 의회, 대통령, 법원이었다. 미국 헌법 조문을 잘 살펴보면 건국 조상들이 그 세 하위 권력 기관 중 어느 것에 가장 비중을 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셋 중에서 가장 앞에서 다루고 그 내용도 가장 길게 다룬 기관은 바로 의회이고 그 의회에 가장 큰 권력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회에만 모든 권력을 주지 않았고, 그것을 분산시키고, 상호간 서로 침범할 수 없게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공화정 체제 하에서는 그 세 권력 기관 중 그 어느 곳도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의회와, 대통령, 사법부는 헌법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현대적 의미의 왕 아래에 있는 신하에 불과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예전의 국왕의 자리에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 그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절대 권력자인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고, 그것은 반역이고 반란이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세 권력 기관 중 그 어느 누구도 헌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근대 사회에서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건설한 미국 건국 조상들의 의도였다.

이후 유럽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건설되었을 때, 각국의 사정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변용은 있었지만, 헌법의 절대적인 위치, 그리고 그 아래에 분산된 권력구조는 거의 모든 공화국이 공유하는 가치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영미법 체계보다는 유럽의 대륙법 체계를 따랐고 민주공화정을 체택한 나라 중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특별히 큰 축에 속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헌법의 구조와 정신은 미국의 헌법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헌법이 개정될 때마다 대통령의 권한은 축소되고 견제의 대상이 되어왔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도 그 어느 것보다 헌법은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며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것은 헌법에 "굴복"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긴 하지만 그 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헌법이 최고의 절대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분명히 하나님의 법이 그 헌법보다 더 위에 위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헌법 조항이 있다면 나는 그 헌법 조항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로마에게 편지를 보냈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로마 정부의 모든 명령을 맹목적으로 100% 준행해야만 한다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대통령 혹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헌법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현재 대한민국의 6공화국 헌법 조항 중 성경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한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헌법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따르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만약 대통령이 그 헌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 대통령을 따르거나 엄호함으로 헌법의 권위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법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적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종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막무가내로 지지하고 옹호하고 있는 것은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 제발, 하나님에 대한 반역적 행위를 멈추고, 자숙하기를 바란다.

p.s.: 사실, 그들이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을 무참하게 비난하고 비판하고 무시하는 그 태도에서 그들의 자의성과 위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께 복종하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구실로 편견과 아집에 기반한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키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단히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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