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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국회 앞 탄핵집회, 1차와 2차 탄핵이 있었던 두 토요일에 국회 앞으로 갔다. 끊임 없이 몰려드는 인파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군중 속에서 미약하나마 내 몸과 목소리를 더했다. 그것이 역사에 남을 이 시기에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다. 80년대 수 많은 집회에 참여하고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그 집회에서 내가 본 특이한 점은 젊은이, 특히 젊은 여성이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에는 20대, 30대만 주로 언급했지만, 내가 직접 본 것은 10대 중반과 후반의 너무나 어린 학생들이 참 많이 함께 했다. 이 추운 날, 그들을 이 광장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대견했고, 고마웠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씁쓸함도 있었다. 교회에는 왜 이 많은 젊은이가 보이지 않는가? 교회는 왜 이들을 품지 못하는가? 이 엄동설한에 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교회에는 왜 이들이 그렇게 보기 힘든가?
고민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참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그리고 그 젊은 층에게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날, 그리고 그 후에 곰곰히 생각하면서 나에게 떠오른 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relevance'의 결여이다. 탄핵 집회에 그 많은 젊은이들이 모인 것은 그 이슈가 자신의 삶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젊은층의 삶과 고민과 생각 속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겉도는 교회의 메시지와 기성 교인들이 보여주는 구태가 그들을 교회 밖에 머물거나 심지어 교회 밖으로 튕겨 나가게 만든다. 교회는 그들의 문제와 질문에 답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에 그들의 삶에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고, 그대신 시대에 뒤떨어지는 구태의 작태를 보이는, 좀 꺼려지는 집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큰 원인은 교회가 제공한다. 예를들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탄핵 시국에도 사회 이슈에 입을 닫는다. 그것은 전에 세월호 비극이 있었을 때도 그랬다.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은 거대한 비극 속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아픈 마음을 움켜쥔 국민들에게 교회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부분 침묵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왜 그런 비극이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말도 못하거나 (내가 보기에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아무말이나 막 던져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 없이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교인들이 너무나 충격을 받고, 그것에 대해 아파하고 궁금해 하고 있는데도 교회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 평온하게 지나간다.
물론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목사가 어떤 말이든 꺼내는 순간 교인들은 분열되고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서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불의가 있어도 그것이 교회를 시끄럽게 할 것이라 판단되면 침묵한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회에 두렵고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함으로써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선지자는 현대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목회자의 사정을 교인들도 그것을 잘 이해한다.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계약이 맺어져 있다. 일부 눈치없는 교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들도 교회 안에서는 침묵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교인들은 배운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그들은 속마음을 꺼내 놓고 세월호에 대해서 말을 하거나, 국회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을 욕하거나 옹호한다. 지금 이 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말할 수 없다. 교회에서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평안한 얼굴을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고 그저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고 아무일 없는 듯이 평온한 얼굴로 '집사님, 목사님, 장로님' 운운하면서 피상적인 말만 주고 받는다.
사실 그것 뿐만 아니다. 교회에서는 자신의 진짜 중요한 기도제목은 내놓지 못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것이 가십거리가 되어 수많은 교인들의 입에 회자되며 수근수근 대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 교회에 다시 적응하면서 교인들에게 들으면서 느낀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이다. 그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교회 밖에 있는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교회는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 놓지 못하고, 내가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떤 말을 듣기가 어려운 곳이 되어 버렸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에 대해 성경적 해석을 듣고 싶은데, 그 누구도, 심지어 목사도 답을 주지 않는다. 교회가 '의미'와 '해석'을 포기하다 보니 어찌보면 교회는 세상 밖의 각종 모임보다도 못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내가 몇몇 교회에서 경험한 소그룹 모임에서는 그저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거리, 심지어 연예인 뒷담화가 대화의 중심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며,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 지체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는 젊은이가 아니라면, 그런 교회를 왜 다니고 싶어할까? 교회 밖에는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있고, 좋은 모임들이 많은데?
십자가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 일년 내내 설교를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지나가는 말로라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교회, 그리고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사회를 해석하고 판단함으로 성도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는 교회는 지금 상태 그대로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일 수 없고, 그들이 엄동설한에 시간을 내서라도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 될 수 없다.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교회가 집중하며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걸고 매달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처럼 십자가가 설교 중에 지나가면서 가끔 한 번씩 언급하는 주변부의 장식에 불과할 뿐 십자가 위에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안에서 벌어진 큰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뜻을 옛적의 선지자가 그랬듯 추상과 같이 과감하게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선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그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어줍잖은 도덕율이나 처세술 강의나 이런저런 entertaining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 이유는 그런 것들에 있어서 교회는 세상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땅의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그 실존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셔서 우리에게 구원이 되셨다는 이 진리는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많이 그리고 자주 들어도 질리지 않은 하나님의 메시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는 어떤 본문을 설교하든 반드시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십자가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과 방법, 힘, 지혜가 담겨있다. 따라서 십자가의 은혜가 빠진 설교는 사실 설교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탄핵 이슈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모든 인간의 삶에 깊숙하게 'relevance'가 있어서 세상의 모든 일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될 수 있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 그것을 무시할 수 없고 이끌릴 수 밖에 없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거기가 아무리 멀어도, 삶이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그곳으로 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예수님 이후 교회의 역사가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는 왜 그것을 모르는가? 왜 그것을 잊어버리고 비본질적인 것을 설교하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교회를 가득 채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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