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믿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저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만 하셨다면, 믿는 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할텐데... 성경이 다른 곳에서 자주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으며,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끝나셨다면, 지금 참 편안하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예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가는 구원을 얻는 길을 여신 분이고, 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값 없이 은혜로 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이 값싼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현대 기독교에서 가장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사도는 말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5) 논리적으로 본다면 이 명제의 대우인 "세상을 이기는 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이다"는 참된 진리가 된다. 다시 말하면, 내가 믿는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믿음을 가진 자라면, 그래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시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자라면,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는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이다.
예수께서 "내게서 떠라가라!"고 하신 그 불행한 무리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는 그들의 항변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와 열정이 그들의 구원의 보증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판단은 다르다. 구원을 받는 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도록 하시는 자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종교적 행위들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몇 가지 구절들이 있다. 마 11:26, 마 18:14, 요 6:40 등에서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아무리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형편없는 영혼이라 할지라도--이라도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 하지만 그것이 교만한 자들에게는 숨겨지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함"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뜻은 1차적으로는 예수께서 그 직전까지 하셨던 산상수훈의 모든 교훈이다. 이 산상수훈을 보다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5장의 핵심구절이 바로 16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세상에서 살다보면, 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다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는다. 불교에서 인생의 근본상태를 "고통"이라고 진단한 것은 너무 정확한 진단이다. 인생은 온갖 고통과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고통과 문제의 연속인 인생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기쁨과 감사의 원천이 되며,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기도로 나아가 우리의 문제와 고통을 아뢸 수 있는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시다. 내 문제와 내 고통이 바로 그분의 문제와 고통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슥 13:9a) 믿음 안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확신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그 믿음을 시험하신다. 때로는 결혼/진로의 문제, 때로는 인간관계의 고통,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을 잃는 고통 등등...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그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단련되며,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하나님께 더욱 기도로 나아가며, 그분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믿는 자에게 주어진 기쁨과 감사가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자들이다. 반면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시험을 견디지 못하여 그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소위 "믿음"이라고 했던 것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으며, 그 문제/고통에서 빠져 나오려고 스스로 안간힘을 다한다. 그들이 평소에 스스로 예수께서 자신들의 하나님이고 구원자라고 고백했지만, 막상 닥친 그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예수는 결코 구원자가 아니며 자신들의 피할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18-2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는, 결국 그 마음의 중심에, 다시 말하면 그 존재의 한 가운데서 붙잡고 살았던 우상을 내려 놓고, 그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린 자들이다. 다시 말해, 말씀의 뿌리가 그 심령의 중심까지 뿌리를 내린 자들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책망하셨던 우상숭배의 습관을 완전하게 처리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 모든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선한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 때문에 나는 세상을,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삶의 원리와 세상의 문제해결 방법과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완전히 포기하고, 천국의 가치와 하나님의 삶의 원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하는 삶의 목표가 생기게 된다. 그것이 믿는 자의 진정한 모습이고, 그것이 믿음생활이다. 이 시대에 이런 믿음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댓글 5개:

익명 :

저... 음... 준서인데요;;;
글의 요지에서 '많이' 벗어난 질문이긴 한데;;;
요일5:5의 대우 명제가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다"가 맞나요?;
세상을 이기는 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다. 가 대우명제 아닌가요?;

Kwangjin's soliloquy :

준서형제.. 논리상 그것은 대우가 아니라 "역"입니다. 그리고 한 명제가 참일 때 대우는 반드시 참이지만, "역"이 반드시 참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익명 :

음... 그러면...

요일 5:5.
if, he does not believe in Christ
then, he is not a man who wins the world

역:
if, he is not a man who wins the world,
then, he does not believe in Christ.

대우:
if he is a man who wins the world,
then, he believes in Christ.

저는 어느 부분에서 틀린거죠?;ㅠ

Kwangjin's soliloquy :

다시 생각해 보내 준서형제의 말이 맞네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바꾸어 놓지요.. 하지만 준서형제가 작은 fact으 오류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전체적인 논지를 꼭 이해 했으면 좋겠어요.

익명 :

감사합니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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