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왔던 찬양이다. 이 찬양이 내 마음에 울림이 되고, 지금까지도 내 삶을 돌아보며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 찬양의 가사 중 특히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1.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가꿔가고"
세상에서의 삶은 경쟁 가운데서의 삶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한다. 비교의 결과는 두 가지다.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우월감,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등감.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인생이다.
비교의 인생. 비교로 인해 자신의 가치가 평가되는 인생은 피곤한 인생이다. 그리고 비참한 인생이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잘나거나 많이 가진 자가 넘쳐난다. 그들 앞에서 나는 늘 보잘 것 없는 자로 인식이 되고,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심지어 십자가의 은혜조차도 작은 것으로 취급되어버리는 것이 이 "비교"하는 인생의 비극이다.
비교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나,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이미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할 수 밖에 없는 죄된 모습과 연약한 모습을 들고 그분 앞에 무릎꿇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다. 그 삶 속에 진정한 자유가 있고,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다.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이 진리를 잠시라도 잊어 버렸을 때, 내가 얼마나 비참한 가운데 처하게 되는지를 여러번 경험했다. 이 찬양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가 남과 비교하는 가운데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허덕이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주님과 함께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분이 소망하시는 내 삶을 가꾸어 가고 있는 삶을 사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2. "삶에 지친 사람들 찾아와 쉬어 가도록 우리 맘 속에 누군가의 자리 남겨두며 살아요."
현대 사회는 바쁘게 돌아간다. 모두들 바쁘다. 여유가 없다. 생존을 위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도 힘든 판에, 남을 돌아볼 여유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그것이 세상살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죄악된 인간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죄악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을 뿐, 결코 천국백성의 삶의 원리가 될 수는 없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 말을 한 바로 직후에, 그런 삶의 모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예로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 바로 그런 삶을 사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어떠해야하는가?
내것을 챙기기도 힘들다. 논문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하는지 모른다. 이미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느낌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낭비없이 쏟아 부어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때마다, 내가 바쁘고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이 가사를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힘들고 연약한 지체들이 찾아와서 쉬고 힘을 얻을 자리는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 그들을 위해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삶을 살고, 많은 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일깨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나 아닌 남을 위한 여유를 남겨두고, 그 여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해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삶의 원리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내 딸들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 준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에게 불러준 찬양이다. 지금은 그 뜻을 잘 알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 가사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