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시험

창조 후 모든 것이 완벽한 그 때에, 마귀는 인간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하나님이 여기 있는 모든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는 이 질문... No라는 답변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이 질문.
속이기의 명수, Rhetoric의 대가, 사람을 넘어뜨리는 데 선수인 마귀가 왜 그리 무식한 질문을 들고 인간에게 접근했을까?
이 질문은 언뜻 보는 것과 같이 그리 단순하고 무식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과하신 단 한 가지의 제한/금지 명령에 인간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제한적" 존재인 자기 자신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게하는 효과를 노린 고단수의 질문이었다.
마귀의 의도대로 인간은 하나님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와의 답변 속에 그려지는 하나님은 금지 명령을 과도하게 내리는 폭군으로,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매우 관심을 깊이 보이는 존재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마음이 이미 그 안에 생겨난 것이다.
그것을 본 마귀는 "네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그분의 권위를, 더 나아가 그분의 하나님됨을 부인하도록 초청한다. 인간은 그 초청에 기꺼이 응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죽음의 길을 가고야 만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팔레스타인의 한 광야.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신 직후 예수님께서 광야로 내몰리셔서 시험을 당하신다. 40일 동안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한 예수님. 마귀는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시험한다.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 당신이신 그분을 시험하여 쓰러뜨리려고 획책하는 마귀... 그가 역사 속에서 자행한 수 없이 많은 시험 중에서 가장 확실한 필살기를 준비했을 것은 뻔한 것... 그런 그가 준비한 첫 번째 질문이 에덴의 인간들에게 던졌던 질문과 같은 종류인 먹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40일이나 굶었으니 얼마나 힘드냐? 네가 하나님 아들 맞아? 40일 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확증하신 것이 맞아?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 하나님의 아들이 뭐 이래? 도저히 못 믿겠는걸...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봐... 그리고 40일을 굶었으면 충분해. 너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메시야고 뭐고 일단 먹어야 생존하지..."

에덴동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마귀는 마치 그가 인간의 편에서서 인간을 지극히 염려하고 생각해주는, 동정해주는 존재로 자신을 포장한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40일전에 하늘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듯, 마치 그것에 자신의 눈 앞에 증명되어야 확정이 되는 듯 교묘하게 시험한다. 또한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메시야로서의 사역에 앞선다는 것을 은근히 부추긴다.

첫째 인간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거리낄 것이 없는 분이시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실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분이시다. 하지만 이 땅에 그분이 오신 것,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셔야할 그분의 사명은 철저히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인간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귀가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고 한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차원에서만 시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가운데 인간 구원을 위한 공생애 사역을 이루느냐 아니면 모든 인간이 매여 있는 먹고사는 문제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인하느냐의 시험인 것이다.

마지막 때... 성경에 의하면 마귀는 역사상 최고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믿는 자들을 시험하며 핍박하며 그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발악하며 온갖 짓을 다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것이 시작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것으로 시험할까?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에게 했던 것과 같이 먹는 문제, 즉 생존의 문제,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시험하지 않을까? 그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말씀을 부인하고 "사는 길"을 택하도록 종용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는 삶의 결과가 죽음이고 파멸인 것처럼 보이도록 우리를 속이지 않을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수히 순종하지 않고 약간 타협하면서 사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을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떡을 포기하고 말씀을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자유"를 포기하고 살아가야 하는 "손해"를 감수하는 삶이라고 속삭이는 마귀에게, 하나님의 속박 가운데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선언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유"를 제한하기를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분의 말씀이... 그분의 말씀만이 나에게 절대적인 진리이고 가치인가?

깨어 있을 때이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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