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집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기타를 치면서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감정에 깊게 몰입한 상태에서 내 나름대로는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곡들을 부르며 스스로 감격해 하며 즐기고 있을 때, 옆 방에 있던 동생이 다가 왔다. 한참을 쳐다본 후에 하는 말...
"형... 지금 형은 정말 멋지게 노래 부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
"그런데 듣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좀 알아 줬으면 좋겠네...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공해도 이만저만한 공해가 아니야..."
"......"
"이제 그만하소!"
평소에 바로 윗 형인 나에게 꼼짝을 못하는 동생인지라, 그가 하는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론 남에게 들려 주려고 노래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너무나 솔직한 말에 더 이상 노래부를 용기가 사라졌다. 그 후로 기타는 거의 잡아본 적도 없고, 노래는 혼자 있을 때만 그것도 최대한 조용히 부른다...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언젠가부터 인테넷의 한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동생을 생각한다. 또 조용히 다가와서 한 마디 하지 않을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생에게는 좀 읽으라고 그렇게 권해도 시간 없다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이 노래할 때, 그것이 공해가 되듯이, 글 못 쓰는 사람이 글을 써댈 때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 얼마나 피해가 될까? 내가 써대는 글들을 읽으면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짜증이 난다면...
글을 쓸 때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난 뒤에 다시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글쓰는 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동생이 어느날 불쑥 전화해서 "형... 인터넷에 있는 글 말이야..."라고 말을 꺼내며 구박을 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기타치는 것을 그치고 조용하기로 작정했던 것처럼, 글쓰기를 그만 두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감상하며 즐기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지...
하지만, 내 글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글쓰기를 지속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내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블로그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그들조차도 거의 들어 오지 않는다. 노래는 듣기 싫은 사람도 들을 수 밖에 없지만, 글은 와서 읽는 사람에게만 피해를 줄 수 있다.(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2. 내 글은 내가 만들어 낸 글이지만 그 내용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의 경험이다. 비록 포장이 매우 엉망일지언정, 그 내용물은 보석과 같은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망각의 천재인 나로서는,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는 것들이다. 내 머리속으로부터 미끄러져 망각의 세계로 떨어지려는 그 보물들을 묶어 놓는 수단이 바로 글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 삶의 작은 경험들, 지식들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3. 머릿속에 맴도는 모호한 생각이나 은혜, 혹은 묵상은 대부분의 경우 글을 씀으로써 더 분명하게 정리가 된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입혔을지 모르지만, 글쓰기를 통해서 그 동안 내 자신에게 많은 유익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글쓰기를 지속하련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위해서...
내 노래는 그쳤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한... 내 글은 지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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