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49-50)

이 두 구절은 마가복음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는 절들로서 학자들마다 해석이 모두 다르고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구절이다. 각 성경번역본들도 나름대로의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번역했기 때문에, 번역본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매우 힘들다.

이 본문에서 핵심단어는 "소금"이다. 그럼 소금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으로 돌아오시는 도중에 제자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다.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집에 도착하셔서 제자 중 몇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막 9:33)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노중에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34) 제자들 사이에서 서열을 가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작업 도중에 서로가 크다고 우기면서 심하게 언쟁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소집하시고 나서는 훈계를 하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
그리고는 집에 있던 어린 아이를 데려다가 안으시면서 강조하신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37)

예수님께서 한참 심각하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요한이 불쑥 엉뚱한 말을 하며 분위기를 흐트러 뜨린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38)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요한의 말에 대해서 예수님은 온유하게 그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금하지 말라고 타이르신 후, 다신 자연스럽게 원래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주제로 돌아 오신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41)
예수께 속한 사람을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자(제자들처럼 서로 밟고 올라가서 높은 자가 되려는 자가 아니라)를 예수님께 칭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관심이 높은 자리, 권력, 부에 있어서는 안되고, 낮은 자리 작은 자를 섬기고 돕는 일, 그리고 죄로부터 떠나 정결하고 거룩한 삶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42-47) 동시에 낮은 곳에 임하려 하지 않고, 죄악을 일삼는 자들에게 임할 지옥형벌을 강조하신다.(45-48)

그 이후에 나오는 구절이 오늘 본문이다. 48절에서 지옥의 불형벌을 강조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바로 다음 말씀이 49절인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이고, 또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49절의 두번째 단어로  "γάρ(가르)"(For, 왜냐하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49절은 지옥에서 불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음식에 소금치듯이 불의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이 해석의 문제점은 49절의 소금과 50절의 소금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다른 해석들이 나오는데, 나는 지옥에 관한 경고의 말씀은 45절부터 시작해서 49절까지로 일단락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무리하게 50절과 연결 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50절의 다음 구절인 10장 1절이 완전히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50절은 가버나움 집에서 제자들을 대상으로 가르치신 말씀의 결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50절의 "소금"은 그 맥락에서 해석해야하고, 그 맥락에서라면, 소금은 적어도 1차적이고 직접적으로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낮은 자세로 섬기는 종이되는 섬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작은 자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섬김, 그리고 그 가운데 죄로부터 떠나 정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만약 그리스도인이 그것들을 잃어버린다면,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런 자들은 마태복음 5:13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의 "소금"이 바로 제자들을 화목하게 하는, 하나되게 하는, 공동체로 온전히 연합하는 그런 끈이 된다는 것이다. 낮은 종의 자세로 섬기는 것을 소망하는 자들의 모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자들의 모임, 정결함과 거룩함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자들의 모임... 그 모임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밖에 없으며,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είρήνη(에이레네)"(평화 = 샬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