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心

오늘... 예배시간에 그 동안 같이 교회를 섬기다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리고 오스틴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된 집사 한 분의 간증을 들었다. 젊은 집사이지만, 그가 주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모습을 지켜 봐왔던 나는, 그의 간증을 들으며,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그의 사역을 볼 수 있었다.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는 결론이 결코 겉치례의 형식적 인사 정도로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그의 삶과 섬김이 분명한 증거로 뒷받침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깨끗한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이 더 선명히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변질되어 버리고, 부족한 나의 모습. 그의 간증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간증을 할 수 있는 그가 참으로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이 교회를 떠날 때는, 결코 간증을 하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것이 모든 분들에게 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에는 참으로 많은 간증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동안의 사역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떠날 때,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오늘 주일예배 설교 말씀을 통해 내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것을 확증하셨다.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복음이 변질되어버리는 교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내가 초심을 잃어버리고 가야할 바른 길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왔는지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강하게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을 들었다. 어찌보면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음에 낙심이 많이 되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회한이 가슴에 몰려왔고 그 집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던 그 집사를 보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가슴 아픔 절반, 그리고 그의 모습을 통해서 비친 나의 한심한 모습에 대한 아픔이 절반 섞인 눈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얼마나 내가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더 깊이 깨달아 간다. 내 자신에 대해 좌절할 때마다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아픔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좌절할 때, 나는 십자가를 붙잡는 것 외에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붙잡고 주님께만 매달리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라는 절박함이 더 해지기 때문이다. 믿는 자로서 그것처럼 복된 것이 또 어디 있는가?

먼 곳으로 이주하는 주님의 충실한 종인 그 집사와 그 가정에 주님의 동행과 역사가 늘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