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노인이 자주 생각난다.
에코가 의도적으로 포스트모던 소설가로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름을 땄다는 그 노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었던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중세 한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도서관장이었다.
이 소설은 그 수도원에서 일어나고 있던 연쇄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파송된 영국의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시종이었던 아드소가 끔찍하게 죽어간 수도원 내부의 피살자들의 죽음의 흔적을 추적하는 가운데 그 범인이 바로 호르헤 노인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다.
수도원... 중세 당시 많이 타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타락해서 악취가 나던 중세 교회에서 영성과 말씀과 기도의 보루였던 그곳... 그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세상과 결별하여 주님 앞에서 (Coram Deo) 살겠다고 작정한 자들이 모인 그곳. 그 당시로 볼 때, 그나마 가장 깨어 있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그리고 그 주인공 호르헤 노인...
왜 그 수도원에서 그런 끔찍한 살인사건을 자행했을까?
호르헤 노인이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분실되었다고 믿어지는 시학의 둘째권(첫째는 "비극"이다.)인 "희극"이 이 수도원의 도서관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 책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서 읽은 수사들을 호르헤 노인이 차례로 죽였던 것이다.
그 책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
그것은 성경에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표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 호르헤 노인의 잘못된 신념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표현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웃지 않으셨고, 예수님이 웃지 않으셨기 때문에 웃음을 죄악이라고 단정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과 해학에 대해서 쓴 "희극"은 불경한 것이고 악마의 서적이 되는 것이다. 그 악마의 서적에 접근한 자들은 성경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논리이지만, 호르헤 노인 나름대로는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리 위에 굳게 서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진리에서 벗어나는 "이단자들"을 과감하게 처단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료 수도사들을 처참하게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았다.
진리...
진리라는 말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이 시대에, 진리를 붙들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그것은 바보들의 이야기일 뿐이고, 편협한 독단주의자들의 광기어린 집착증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이 진리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 그리고 진리를 더욱 선명히 붙잡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진리를 놓치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들이 진리를 잃어버리고, 세속에 물들어간다. 그것은 교회가 생명을 잃는 것이고, 그것으로 교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진리 사수...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너무나 critical한 문제이다. 따라서 진리를 더욱 분명히 하고, 그 진리를 타협없이 지켜나가는 것은 이 시대에 꺼져가는 생명의 등불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가 진정한 진리라면... 그것도 단순한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토록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자 했던 진리라면... 그 진리는 생명의 진리이다. 무책임하게 마구 휘둘러댐으로써 상처를 주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서슬퍼런 칼 같은 진리가 아니라, 그 진리를 가진 자에게 아름다운 열매와 향긋한 향기가 넘쳐나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의 진리인 것이다. 진리를 더 알고, 진리에 더 누릴수록, 그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나며,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자유가 있으며,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며, 겸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쳐나고, 상황에 관계 없이 안식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가 보든지 간에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열매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고자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복음의 진리를 누구나 다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음의 진리를 가진 사람들, 복음의 정수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그 인격에 있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열매들이 증거로 나타나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삶에서 진리를 명확하게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런 인격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너무 드물다. 많은 경우는 진리가 없는 상태에서 열매에 해당하는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다. 그것은 가짜일 뿐이다. 또 다른 경우는 열매가 없이 진리에 대한 지식만 늘어간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호르헤 노인과 같이 인격적인 매력이 거의 없는 냉혈한, 혹은 현대적 율법주의자가 되어간다.
둘 다 완전히 잘 못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 위에 분명히 서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열매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열매들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반대로 복음을 진정으로 맛본 자들, 복음의 진리를 더 선명하게 깨달은 자들에게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히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열매들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면, 복음의 진리를 더 "깊이" 혹은 "분명하게"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허구이고, 착각일 뿐이다.
만약 열매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소위 "진리"에 더 집착하게 될 때, 그 결과는 호르헤 노인, 그리고 그 소설의 마지막에 불에 타서 없어져버린 그 도서관과 같은 운명이 되어버릴 것이다.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 복음을 더 선명하게 깨닫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엄중하게 물어 보아야 한다. 나에게서 주님께서 기뻐 찾으시는 그 열매가 그 만큼 풍성하게 맺히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진정으로...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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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집사님,
오늘 은혜로운 교제와 말씀들 가운데 주님께서 제게 주신 깨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꾸미지 않은 모습, 못난 모습, 흉한 모습들까지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최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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