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인 김회권 목사님의 책 "청년설교"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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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보면 현실(現實)의 '현'(現)자에는 왕(王) 변에 볼 견(見)자가 붙어 있습니다. '보는 것'이 '왕노릇한다'는 뜻입니다. 현실(reality)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구성될 수 있는 상황을 뜻합니다. 현실은 무한입방면체와 같이 역동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항구적인 힘이고 지배력인지를 잘 분면하는 것이 정당한 현실인식입니다. 우상신 바알과 그의 하수인인 이세벨의 권력은 비실체적(unsubstantial)임을 아는 것이 정당한 성경적 현실 인식입니다. 진실로 우상신과 그의 세력은 덧없습니다. 항구적인 존재 기반이 없는 바알 신은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위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등장한 악역 조연일 뿐입니다.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별 것 아닌 것도 엄청나게 커 보이고, 엄청나게 큰 상황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역동적 상대성이 바로 현실 인식의 세계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아닌 모든 것들을 무(無)로 돌릴 수 있는 역동적인 현실 인식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힘도 하나님의 힘 앞에 세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신앙입니다(사 40:12-26).
(중간생략)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지극히 작은 음성이 새로운 사명을 고취해 영적 침체를 극복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지침이 됨을 발견합니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Ernesto Cardenal) 신부가 말하듯이, 우리는 저 고대의 사막 수도사처럼 자신의 내면에서 절대 침묵 가운데 떠오르는 세미한 소리를 감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혈기어린 소음 속에 묻혀 오듯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과 지진과 폭풍 같은 소란스러운 환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합니다. 그러나 이 세미한 음성 속에는 불과 지진과 바람의 언어가 들어 있습니다. 님시의 아들 예후와 하사엘과 엘리라가 바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사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알 우상숭배자들을 한칼에 다시 쳐부수어 줄 불과 지진과 바람이 될 것입니다. 불과 바람과 지진과 같은 후계자를 세울 것을 명령하는 그 하나님의 음성은 지극히 세미합니다. 우리가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그 음성이 위력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미한 차가운 음성 속에 엄청난 불의 언어, 폭풍과 바람의 언어, 지진의 언어가 시한폭탄처럼 내장되어 있습니다. 엘리야 자신은 불과 바람과 지진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가 안수해서 세웠던 예후와 하사엘과 엘리사는 불과 자진과 바람을 가져왔습니다(왕하 8-10장 참조). 이들은 모두 바알 우상숭배자들을 타파했습니다.
엘리야의 영적 침체는 극복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엘리야에게 예비해 두신 세 사람에게 안수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동굴 안에서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확 트인 현실을 그는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침체의 극복입니다. 인간의 제한된 시야의 동굴 우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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