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장에 있는 이 말...
사도 바울의 삶과 인생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구절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며, 너무나 부러운 고백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바울. 그는 그 인생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관제라고 표현한다. 이제 얼마 후면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로마 황제 네로의 그 광기의 희생이 되어야 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머리가 잘려 나간 후, 자신의 목에서 치솟을 피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그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하나님 앞에 부어드리는 제사로 드리기를 갈망한다. 관제...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드린 그의 섬김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 매 순간을 자신을 관제로 드리는 자세로 살아왔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 분께 모든 것을 드리고,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갈망해 왔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바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로 그런 고백을 드리는 삶, 그리고 그것을 매 순간 이루어내는 삶을 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은 그의 삶을 완전히 사로 잡았고, 그분께 사로잡힌 그 삶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고난 받고,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 삶을 갈망하며, 복을 누리는 삶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분께 미쳐 있었기 때문에... 그분께 사로 잡혀 살았기 때문에...
하지만 여기서 다시 그가 예수님께 사로잡힌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은 어찌보면 죽음에 그가 가졌던 관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는 그의 죽음을 "떠남"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떠나다는 의미의 원어는 "아날뤼시스"이다. 이 단어는 나중에 영어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analyze" 혹은 "analysis"가 된다. 아날뤼시스는 "해산하다"라는 뜻을 가진 다른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는 "출발하다" 혹은 "항해를 시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단어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분리이고, 하나는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바울의 관점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목이 잘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일 뿐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음은 몸을 떠나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신생아가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리고 항해를 떠나는 배가 항구와 분리되어 목적지를 향해 긴 길을 떠나는 것처럼...

바울은 평생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이다. 현실을 떠나 영원으로 나아가는 삶. 그리고 그 영원 가운데서 함께할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작업이 바로 그의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준비를 누구보다도 철저히 하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관제로 부어드리는 것을 기뻐했던 것이다.

위대한 사도 바울...
그의 삶을 돌아보며 내 자신을 본다. 주님께 내 삶을 관제로 부어드리기는 커녕, 죄 가운데서, 혹은 연약함 가운데서 내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나 주님께로 항해할 그 순간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과 현실에서의 필요를 채우느라 급급해 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나도 바울과 동일한 고백을 드리고 싶다. 그가 오늘 본문을 그 삶의 목표로 삶고 살았던 것처럼, 나도 동일한 고백을 내 삶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며 살기를 원한다.

주님! 사도 바울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기를 원합니다. 그와 같이 지혜롭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 저를 완전히 사로잡아 주시고, 진정으로 복된 자로, 지혜로운 자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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