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받아들이는 마음...

몇 주 전에 타이어 rotation을 하러 늘 가는 타이어 전문점에 갔다. 그 곳의 서비스가 빠르기도 하지만(예약하고 가면 20분 이내에 모두 완료), 싸기도 하고, 또 친절하고 적극적인 종업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 타이어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늘 거기로 간다. 그 가게에서 타이어를 한 개라도 샀다면 6천마일마다 공짜로 rotate해 주고, 공기압을 체크하며, wheel balance도 무료로 해 주기 때문에 부담없이 갔다.

그날도 미리 예약하고 일찍 가게에 갔다. 가게에 들어 서기도 전에, 직원이 나와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나를 맞이하고는 같이 내 차로 가서 타이어를 체크했다. 타이어 rotation과 핸들의 떨림 때문에 wheel balance를 다시 체크하고 싶다고 말하니 문제 없단다. 그러면서 타이어 하나가 거의 다 닳아서 당장 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타이어를 가끔씩 체크하는 나로서는 좀 의아했다. 직접 손으로 깊이 파인 홈을 만져보고, 거기에 있는 gauge로 늘 체크하는데, 타이어 네 개 모두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있었더니, 더 협박을 한다. 길가다가 터지면 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조금 생각한 후 나중에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분 후... 모든 작업는 끝났고, 돈 한 푼 안내고, 차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집에 도착한 후 타이어를 다시 점검해 보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네 개의 타이어 모두 정상이었다. 다른 타이어보다 좀 더 마모가 심한 타이어가 하나 있었지만, 앞으로도 한참을 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직원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었다.

내 차의 타이어의 상태에 대해서 내가 잘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할 때는, 아무래도 흠칫하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돌아보며, 아무리 확실한 것이라도 다시 점검하게 된다. 그것이 전문가의 말의 위력이다.
하지만 세상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모두 믿을 것이 못된다. 그의 경고는 내 차를 진지하게 다시 돌아보는 데까지 나를 인도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경고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나에게 주는 경고라면 어떨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그 무게만큼 받지 않는다. 그 경고에 흠칫하거나, 약간 마음의 거리낌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무서운 말씀으로 받지 않는다. 타이어 전문가가 타이어가 문제가 생겨 달리는 도중에 터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해도, 그렇게 말한 동기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말의 나에 대한 impact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은 여과 없이, 그 말씀 그대로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도, 내 마음은 어느새 그것을 tone down해서 듣는다. 그 경고가 경고로 들리지 않는다. 그 경고의 말씀에 즉시 무릎꿇고 회개하거나 돌이키는 action을 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교훈 정도로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내 생각과 내 처지와 내 감정을 섞어 넣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더 흐리게 만든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로 들어가고, 진노의 불길을 더욱 더 거세게 함으로 화를 자초한다.

아! 끊임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완악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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