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7년 전 영어수업에서 만난 중국 여학생... 영어수업에서는 보기 드물게 인문학을 하는 학생이라서 쉽게 가까와졌다. 중국에서 영문학을 했었고 여기서는 비교문학을 하면서 중국문학 쪽에 좀 더 비중을 두고 공부하는 학생이다.
인문학과 문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다른 중국학생들과는 다르게(?) 착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한 사람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어려서 여동생처럼 지냈었고, 학교에서 자주 만났었고, 우리 집에도 한 번 초대 받아서 와서 식사를 했었다.
하지만 청년부를 섬기면서부터 내가 시간이 거의 없다보니, 그 동안 오가면서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하는 정도였을 뿐, 만나지는 못했다. 청년부 사역을 그만두고 나니, 이제는 그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매년 중국을 다녀오는 그 학생... 얼마 전에 또 중국에 다녀 왔다면서 이메일로 연락을 해 왔다. 그래서 약속을 잡았고, 오늘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영어로 대화하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지만, 두 시간의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가지 대화를 나눴다. 논문 쓰는 어려움과 팀... 각자의 논문 주제를 서로 나누고, 거기에 자신이 아는 것들을 좀 더 보태주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동안 남자친구가 없었던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 하지만 졸업 아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의견차를 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7년 동안 알아왔지만, 그리고 복음에 대해서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는 있었지만, 이 여학생은 이미 복음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접하고 가까이 했던 중국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들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기독교를 (복음이 아니라) 접했던 그녀는 나중에 내가 복음에 대해서 나누기를 원했을 때,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아예 듣기를 거부했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엄중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물론 그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을 무턱대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 여학생이 오해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들은 몇 경우는 바로 이 말씀에 해당하는 행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서 그 영혼이 복음의 가능성으로부터 돌아서 버린 것이다.
앞으로 좀 더 자주 만나기로 했다. 도서관의 같은 층에 방이 있으니 자주 만나서 논문과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정말 기도하기는, 그 만남들 속에서 내가 복음을 설명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부정적인 경험과 인식을 버리고 진지하게 복음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생명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