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음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17-22)

예수님께서 길을 가고 계셨다. 사역을 시작하신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자신의 집앞을 지나가자, 한 청년이 예수님 앞으로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는다. 이 청년은 부자였다. 그리고 그의 말로 판단하건데,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는 자로서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자였다. 당시는 종교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이는 그가 그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자로서 인정 받을 만한 지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그가 영생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열망하는 마음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겸손했다. 그 영생의 길을 발견하고 소유하기 위해서라면,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보잘 것 없은 예수 앞에서 무릎꿇는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였다.

그가 예수님께 자신의 가장 심각한 고민에 대해 여쭈어 본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의 질문에 대해서 답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중요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신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그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선하다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청년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나오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점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에게 물으신다.
네가 십계명을 지켰느냐?
거기에 대해 부자청년은 정말 자신있게 대답한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그의 대답에 대해 예수님은 부정하지도 않으시지만 긍정하지도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셨다"고 마가가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그의 열심과 진심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신 것 같다. 그리고 그 진심을 받으시고, 그가 진정으로 영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십계명을 모두 준수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부자청년에게 자신의 재물을 모두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청년이 십계명을 준수했지만, 제 11계명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자신하는 그 청년에게 그가 십계명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음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그 청년에게 있어서 재물은 우상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라도 그 재물을 포기해야 한다면, 차라리 영생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재물은 그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십계명의 제 1계명과 2계명을 동시에 범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머지 계명도 모두 형식적으로 준수될 뿐, 진정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며, 그 우상을 내려 놓을 때에만, 그리고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만을 "소유"할 때에만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에, 그 부자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예수님으로부터 떠난다. 그 후 그가 다시 돌아 왔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끝까지 재물을 놓지 못한 가운데 영생을 얻지 못하고 지옥의 심판으로 갔을 것 같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결코 대항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불순종이 바로 그 인생의 파멸로 인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놓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 그것은 인간의 죄악만큼이나 뿌리깊다.  영생을 그토록 원했지만, 그 우상을 내려 놓지 못해, 눈 앞에서 그 영생을 놓친 이 부자청년의 어리석음은 동시에 나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내려 놓음... 순종... 
절대 내려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내가 쥐고 있는 그것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의지하며, 그분께서 나에게 그것을 이루어 주시도록 간구하며, 의지적으로 순종의 길을 가련다.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분명히 그 길을 갈 것 이다. 그리고, 결국... 내려 놓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졌던 또 한 명의 부자청년이었던 바울처럼 결국... 승리할 것이다.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주님 때문에.... 그분이 함께하시고, 그분이 나로 하여금 힘을 주실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바울의 고백을 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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