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들러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또 안내 말씀드립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블로그를 8월 10일부터는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비공개로 전환되면, 글을 작성하는 저 외에는 아무도 블로그에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글은 계속 쓰겠지만, 공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비공개에서 다시 공개로 전환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원히 비공개로 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8월 10일부터 상당기간 동안은 이 블로그에 엑세스 할 수 없게됨을 알려 드립니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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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25
예연이가 더럽게 보여요..
(2006.03.28 작성한 글)
오늘 아침... 예연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난지 얼마 안된 시간이라서 나는 평소에 쓰던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예연이가 불현듯 생각난다는 듯이 말했다.
"아빠! 안경 안쓰면 예연이가 더럽게 보여요..."
순간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뭐라고?"
"아빠가 안경을 안쓰고 있으면 예연이랑 다른 것들이 더럽게 보이잖아요!"
무슨 말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그 뜻을 깨닫게 된 것은 약 20초 후...
예연이는 평소에 자주 "아빠는 왜 안경을 써요?"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주로 "안경을 안쓰면 깨끗이 안 보이니까... 안경을 쓰면 사람들이 깨끗하게 보여..."라고 대답해 주었다. 예연이의 입장에서 '깨끗하다'는 것이 영어로 볼 때 'clear'가 아니라 'clean'으로 이해가 되었나보다. 그래서 '안 깨끗하다'는 것이 '흐리다'와 동의어가 아니라 '더럽다'와 동의어로 인식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안경을 안쓰면 예연이가 더럽게 보여요!"라고 말할 수 밖에...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예상치 않은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앞으로 뭔가를 설명해 줄 때 보다 더 정확하게 알려 주도록 신경을 더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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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작성한 글)
오늘 아침... 예연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난지 얼마 안된 시간이라서 나는 평소에 쓰던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예연이가 불현듯 생각난다는 듯이 말했다.
"아빠! 안경 안쓰면 예연이가 더럽게 보여요..."
순간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뭐라고?"
"아빠가 안경을 안쓰고 있으면 예연이랑 다른 것들이 더럽게 보이잖아요!"
무슨 말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그 뜻을 깨닫게 된 것은 약 20초 후...
예연이는 평소에 자주 "아빠는 왜 안경을 써요?"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주로 "안경을 안쓰면 깨끗이 안 보이니까... 안경을 쓰면 사람들이 깨끗하게 보여..."라고 대답해 주었다. 예연이의 입장에서 '깨끗하다'는 것이 영어로 볼 때 'clear'가 아니라 'clean'으로 이해가 되었나보다. 그래서 '안 깨끗하다'는 것이 '흐리다'와 동의어가 아니라 '더럽다'와 동의어로 인식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안경을 안쓰면 예연이가 더럽게 보여요!"라고 말할 수 밖에...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예상치 않은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앞으로 뭔가를 설명해 줄 때 보다 더 정확하게 알려 주도록 신경을 더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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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51:00
"True Love"
요즘 내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찬양...
강한 저음 비트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참 좋다...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이 구절에서 아버지의 고통과 사랑을 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 보잘 것 없는 악한 자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True Love
Come close listen to the story
About a love more faithful than the morning
The Father gave his only son just to save us
The earth was shaking in the dark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Search your heart, you know you can't deny it
Come on, lose your life just so you can find it
The Father gave his only son just to save us
The earth was shaking in the dark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Now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oh, He is alive
He rose again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Come close listen to the story
강한 저음 비트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참 좋다...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이 구절에서 아버지의 고통과 사랑을 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 보잘 것 없는 악한 자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True Love
Come close listen to the story
About a love more faithful than the morning
The Father gave his only son just to save us
The earth was shaking in the dark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Search your heart, you know you can't deny it
Come on, lose your life just so you can find it
The Father gave his only son just to save us
The earth was shaking in the dark
All creation felt the father's broken heart
Tears were filling heaven's eyes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Now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Jesus is alive
oh, He is alive
He rose again
When blood and water hit the ground
Walls we couldn't move came crashing down
We were free and made alive
The day that true love died, the day that true love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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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01:00
미국의 낙태 실태
(2006.01.04 다른 곳에 작성한 글)
National Right to Life라는 단체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있었다.
On January 22, 1973,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hadned down the infamous Roe v. Wade decision, legalizing abortion for any reason. Now, after thirty-three years under Roe, more than 47 million innocent unborn babies have been aborted.
Most of us can't fathom how many lives that really is. There are over 3,500 abortions every single day in the United States. That is 146 per hour or one about every 25 seconds. For every 1,000 live births, there are 306 abortions. And ... There are more than 140,000 second and third trimester abortions done in our country each year.
나는 모태에 있는 아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다.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그 생명을 중단시키는 것은 바로 살인행위이다. 한 사람의 실수를 다른 사람의 생명과 바꾸는 행위이며, 가장 무책임한 죄악일 뿐이다. 이 살인행위가 중단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National Right to Life라는 단체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있었다.
On January 22, 1973,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hadned down the infamous Roe v. Wade decision, legalizing abortion for any reason. Now, after thirty-three years under Roe, more than 47 million innocent unborn babies have been aborted.
Most of us can't fathom how many lives that really is. There are over 3,500 abortions every single day in the United States. That is 146 per hour or one about every 25 seconds. For every 1,000 live births, there are 306 abortions. And ... There are more than 140,000 second and third trimester abortions done in our country each year.
나는 모태에 있는 아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다.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그 생명을 중단시키는 것은 바로 살인행위이다. 한 사람의 실수를 다른 사람의 생명과 바꾸는 행위이며, 가장 무책임한 죄악일 뿐이다. 이 살인행위가 중단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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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31:00
아버지의 집
한 여름 새벽... 그 새벽에 뼈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떠는 homeless의 그 추움...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 모두가 집을 향하여 바쁘게 가고 있는 그 때에, 갈 집이 없는 homeless의 스산하고 우울한 가슴...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
한 여름 대낮에도 두꺼운 옷을 몇 겹으로 껴입은 Homeless들... 그들의 추위는 뚝 떨어진 기온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의 외로움과 싸늘함에서 느껴지는 추움일 것이리라...
모든 인간은 어차피 갈 바를 알지못하고, 쉴 집을 얻지 못하고 떠도는 Hobo의 인생인 것...
절망과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서 쉴 곳을 찾지 못해 늘 방황하는 그 영혼 깊숙이 느끼는 존재의 추움으로 인해, 외로움으로 인해 모든 영혼은 떨고 있는 것...
비록 어떤 이들은 많은 소유와 명예와 친구와 다른 것들로 그것을 해소해 보려고 하지만, 그 영혼의 존재적인 외로움과 추움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의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 Hobo적 인생의 한 중심에서 그 모든 인간의 아픔과 외로움과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셨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예수님께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허무의 썰렁함을 몸소 체험하심에서 나오는 탄식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영접하였다는 것은 바로 인생의 가장 근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존재적 Hobo로서 인생의 바다를 방향도 없이 고난 가운데 떠도는 자가 아니라 집이 있는 자로, 그것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가 계시고 나를 위해 방을 마련하시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그 집을 가진 자로, 그 집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4)
가서 쉴 집이 있는 자는, 날씨가 춥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 집을 생각하며, 집에 깨끗이 씻고 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나를 맞아 주실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의 추위를 눈녹듯이 없애버리고, 내 영혼 한 중심을 따뜻함으로 채워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요즘...
나에게 불어닥치는 견디기 힘든 이 찬 바람...
그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집에서 내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시고, 내 눈에 눈물을 씻어 주시며, 나를 품에 안아 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이런 묵상을 한 오늘 아침... 찬송가 406장이 내 마음을 울리며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내 영혼의 비상을 돕는 것을 느낀다.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하며 네짐을 지시네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때 주 내게 속삭이며 새희망 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 들리네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용기를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슬픔에 잠길때 주님의 능력입어 원수를 이기네
[후렴]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때 그 은혜가 족하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 모두가 집을 향하여 바쁘게 가고 있는 그 때에, 갈 집이 없는 homeless의 스산하고 우울한 가슴...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
한 여름 대낮에도 두꺼운 옷을 몇 겹으로 껴입은 Homeless들... 그들의 추위는 뚝 떨어진 기온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의 외로움과 싸늘함에서 느껴지는 추움일 것이리라...
모든 인간은 어차피 갈 바를 알지못하고, 쉴 집을 얻지 못하고 떠도는 Hobo의 인생인 것...
절망과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서 쉴 곳을 찾지 못해 늘 방황하는 그 영혼 깊숙이 느끼는 존재의 추움으로 인해, 외로움으로 인해 모든 영혼은 떨고 있는 것...
비록 어떤 이들은 많은 소유와 명예와 친구와 다른 것들로 그것을 해소해 보려고 하지만, 그 영혼의 존재적인 외로움과 추움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의 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 Hobo적 인생의 한 중심에서 그 모든 인간의 아픔과 외로움과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셨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예수님께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허무의 썰렁함을 몸소 체험하심에서 나오는 탄식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영접하였다는 것은 바로 인생의 가장 근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존재적 Hobo로서 인생의 바다를 방향도 없이 고난 가운데 떠도는 자가 아니라 집이 있는 자로, 그것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가 계시고 나를 위해 방을 마련하시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그 집을 가진 자로, 그 집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4)
가서 쉴 집이 있는 자는, 날씨가 춥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 집을 생각하며, 집에 깨끗이 씻고 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나를 맞아 주실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의 추위를 눈녹듯이 없애버리고, 내 영혼 한 중심을 따뜻함으로 채워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요즘...
나에게 불어닥치는 견디기 힘든 이 찬 바람...
그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집에서 내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시고, 내 눈에 눈물을 씻어 주시며, 나를 품에 안아 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이런 묵상을 한 오늘 아침... 찬송가 406장이 내 마음을 울리며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내 영혼의 비상을 돕는 것을 느낀다.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하며 네짐을 지시네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때 주 내게 속삭이며 새희망 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 들리네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용기를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슬픔에 잠길때 주님의 능력입어 원수를 이기네
[후렴]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때 그 은혜가 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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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21:00
American Indian의 한(恨)
19세기 말 Sioux 인디언으로 미국식 현대 교육을 받았던 Zitkala-Sa (Gertrude Bonnin)의 자서전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서양화 되어 돌아온 그녀에게 한 말...
"My daughter, beware of the paleface. It was the cruel paleface who caused the death of your sister and your uncle, my brave brother. It is this same paleface who offers in one palm the holy papers, and with the other gives a holy baptism of firewater. He is the hypocrite who reads with one eye, 'Thou shalt not kill,' and with the other gloats upon the sufferings of the Indian race." (참고, paleface: the white, the holy paper: the Bible, firewater: arms (무기))
She sprang to her feet, and standing firm beside her wigwam, she sent a curse upon those who sat around the hated white man's light. Raising her right arm forcibly into line with her eye, she threw her whole might into her doubled fist as she shot it vehemently at the strangers. Long she held her outstretched fingers toward the settler's lodge, as if an invisible power passed from them to the evil at which she aimed.
백인들의 오랜 침략의 역사... 그 가운데 끊임없는 배신과 학살과 위선 속에서 살아온 미국 인디언의 아픔... 모든 미국 인디언들이 공유하는 한과 아픔...
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원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고통과 불신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인디언들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니, 그들의 한 서린 저주가 이미 미국에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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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ughter, beware of the paleface. It was the cruel paleface who caused the death of your sister and your uncle, my brave brother. It is this same paleface who offers in one palm the holy papers, and with the other gives a holy baptism of firewater. He is the hypocrite who reads with one eye, 'Thou shalt not kill,' and with the other gloats upon the sufferings of the Indian race." (참고, paleface: the white, the holy paper: the Bible, firewater: arms (무기))
She sprang to her feet, and standing firm beside her wigwam, she sent a curse upon those who sat around the hated white man's light. Raising her right arm forcibly into line with her eye, she threw her whole might into her doubled fist as she shot it vehemently at the strangers. Long she held her outstretched fingers toward the settler's lodge, as if an invisible power passed from them to the evil at which she aimed.
백인들의 오랜 침략의 역사... 그 가운데 끊임없는 배신과 학살과 위선 속에서 살아온 미국 인디언의 아픔... 모든 미국 인디언들이 공유하는 한과 아픔...
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원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고통과 불신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인디언들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니, 그들의 한 서린 저주가 이미 미국에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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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20:00
이상과 현실(교회에서)
(2005.12.06에 다른 곳에 썼던 글)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다녔던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교회는 많은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상의 대부분은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경의 원리에 보다 가까운 교회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상 중의 하나가 공동목회였다. 대부분의 교회가 한 명의 담임목사를 두고 그 아래에 교역자들을 두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동담임목사들을 두는 것을 그 교회의 원칙으로 세웠다. 사실 나로서는 한 명의 담임목회자를 두는 것이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공동목회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교회 개척 때부터 함께한 멤버들 간에는 매우 의미가 큰 것이었던 것같다.
교회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공동목회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서 공동목회를 추진했던 목사님들 사이에 상당히 큰 상처를 남기고 단독목회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회의 리더들인 집사들은 목회자들이 서로 상처를 받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 중에 특히 한 집사는 결국 그 문제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 집사는 성실했고 신실했으며, 교회의 중고등부를 담당해서 정말 잘 섬기는 교회의 큰 일꾼이었다. 그는 한국 교회의 부패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아픈 만큼 "바른" 교회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에게 공동목회는 그 "바른" 교회의 척도로 자리하고 있었을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공동목회가 더 이상 불가능한 교회에 머문다는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는 오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그 분이 있었을 때 점차 자리를 잡고 성장해 가고 있었던 중고등부는 그 후 한참 동안 힘들어졌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그분이 떠난 결과로 발생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교회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 사실 개척교회로서 너무나 많은 곳에 일꾼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분이 계셨더라면 중고등부가 활성화 되고 많은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잘 자라는데 크게 쓰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한 예를 생각한다. 내가 아는 다른 교회는 수 천 명이 모이는 그 동네에서는 가장 자리를 잘 잡고 성장한 교회였다. 그 교회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가지는 이런저런 문제도 많은 그런 평범한 교회였다.
그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담임 목사가 자신을 지지하는 교회 내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아름답지 못한 방법으로 측근들을 장로로 세워가기 시작했다. 이는 교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젊은 집사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에 대한 반대 및 시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갈등의 상황은 점차 증폭되어 시정을 요구하는 측에 속해있던 젊은 집사에게 부목사가 공개적인 모임에서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나는 외부인으로서 교회 내부의 사정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 교회가 무엇 때문에 갈등을 겪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젊은 집사의 태도였다.
"나 같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 상황 속에서 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 같은면, 그런 폭언을 들으면서까지 교회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교회고, 너무나 좋은 교회들이 많은 상황에서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여기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교회를 조용히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아픈 가슴을 달레고 새롭게 출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나 같으면...
하지만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그 젊은 집사의 반응은 달랐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사는 그 교회를 떠나지도 않았고, 그 교회에 머물러 계속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들었다. 그는 바르지 못한 교회에서 바르게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항상 이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개혁하며 교회를 개혁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진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부패한 모습을 보고 그것을 말씀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수 많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품는 것과 현실 교회에서 섬기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잘 연결되지 않으면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두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낫다는 말을 함부로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두번째의 경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우리를 부르신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함께 가야할 길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 이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 공동체와 나의 관계를 끊고 더 가까이 있는 다른 공동체로 옮겨가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이단이 아닌 이상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공동체에 한 몸이 되어 머물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이상을 향해 함께 가기를 권하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불려갔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상을 품고 얼마나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아니면 나에게 맞겨진 영혼들을 돌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왔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한 번 생각해 볼만한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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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다녔던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교회는 많은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상의 대부분은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경의 원리에 보다 가까운 교회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상 중의 하나가 공동목회였다. 대부분의 교회가 한 명의 담임목사를 두고 그 아래에 교역자들을 두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동담임목사들을 두는 것을 그 교회의 원칙으로 세웠다. 사실 나로서는 한 명의 담임목회자를 두는 것이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공동목회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교회 개척 때부터 함께한 멤버들 간에는 매우 의미가 큰 것이었던 것같다.
교회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공동목회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서 공동목회를 추진했던 목사님들 사이에 상당히 큰 상처를 남기고 단독목회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회의 리더들인 집사들은 목회자들이 서로 상처를 받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 중에 특히 한 집사는 결국 그 문제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 집사는 성실했고 신실했으며, 교회의 중고등부를 담당해서 정말 잘 섬기는 교회의 큰 일꾼이었다. 그는 한국 교회의 부패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아픈 만큼 "바른" 교회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에게 공동목회는 그 "바른" 교회의 척도로 자리하고 있었을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공동목회가 더 이상 불가능한 교회에 머문다는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는 오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그 분이 있었을 때 점차 자리를 잡고 성장해 가고 있었던 중고등부는 그 후 한참 동안 힘들어졌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그분이 떠난 결과로 발생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교회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 사실 개척교회로서 너무나 많은 곳에 일꾼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분이 계셨더라면 중고등부가 활성화 되고 많은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잘 자라는데 크게 쓰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한 예를 생각한다. 내가 아는 다른 교회는 수 천 명이 모이는 그 동네에서는 가장 자리를 잘 잡고 성장한 교회였다. 그 교회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가지는 이런저런 문제도 많은 그런 평범한 교회였다.
그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담임 목사가 자신을 지지하는 교회 내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아름답지 못한 방법으로 측근들을 장로로 세워가기 시작했다. 이는 교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젊은 집사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에 대한 반대 및 시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갈등의 상황은 점차 증폭되어 시정을 요구하는 측에 속해있던 젊은 집사에게 부목사가 공개적인 모임에서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나는 외부인으로서 교회 내부의 사정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 교회가 무엇 때문에 갈등을 겪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젊은 집사의 태도였다.
"나 같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 상황 속에서 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 같은면, 그런 폭언을 들으면서까지 교회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교회고, 너무나 좋은 교회들이 많은 상황에서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여기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교회를 조용히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아픈 가슴을 달레고 새롭게 출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나 같으면...
하지만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그 젊은 집사의 반응은 달랐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사는 그 교회를 떠나지도 않았고, 그 교회에 머물러 계속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들었다. 그는 바르지 못한 교회에서 바르게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항상 이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개혁하며 교회를 개혁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진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부패한 모습을 보고 그것을 말씀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수 많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품는 것과 현실 교회에서 섬기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잘 연결되지 않으면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두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낫다는 말을 함부로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두번째의 경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우리를 부르신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함께 가야할 길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 이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 공동체와 나의 관계를 끊고 더 가까이 있는 다른 공동체로 옮겨가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이단이 아닌 이상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공동체에 한 몸이 되어 머물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이상을 향해 함께 가기를 권하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불려갔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상을 품고 얼마나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아니면 나에게 맞겨진 영혼들을 돌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왔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한 번 생각해 볼만한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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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25:00
찬양이 강물처럼...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팝송 레코드만 1500장 정도 있었다. 팝송의 메니아였던 큰형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마련한 것들로, 당시 노래들 중에서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전축 또한 성능이 매우 좋은 것이었는데, 덕분에 우리 4형제는 음악에 심취할 수 있었다.
우리 형제들이 음악듣는 방식은 이웃집에 큰 폐를 끼치는 방식이었다. 누가 음악을 듣던, 누구와 함께 듣던 상관 없이, 바로 옆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듣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웃집에서 자주 claim이 들어 왔고,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에게 음악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하소연도하고 명령도 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단호했다.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님께 미안하여, 헤드폰을 끼고 듣곤 했다. 헤드폰이 상당히 좋은 것이긴 했지만, 큰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음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싫어하는 장비였는데, 어머님이 마음아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미안해서, 내 나름대로 타협한 것이 헤드폰이었다.(그 결과... 내 청력에 손상이 생겼는지, 가는귀가 먹어서 왠만한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볼륨은 최대한으로 하여 가슴이 울릴 정도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음악의 세계에 빠져 들었으며, 온통 음의 바다에 푹 젖어드는 느낌을 즐기곤 했다.
요즘.. 집에서 가끔씩 찬송가를 듣는다. 그것도 컴퓨터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소리의 음악으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아내와 살다보니, 내 삶에서도 큰 소리의 음악이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음질이 형편없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찬송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하지만 요즘도 큰 음악속에 잠길 때가 있다. 그것은 혼자서 차를 타고 갈 때... 볼륨은 최대한으로 높아지고, 나는 찬양의 홍수 속에 빠진다. 내 가슴을 울리는 음율도 좋지만, 그 가사 하나하나가 내 가슴을 떨리게 하고, 내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많큼 기쁨과 감사를 준다. 그런 감격스러운 고백을 그냥 들을 수가 없다. 마치 그 찬양의 가사가 내 몸속으로 완전히 침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 온 영혼이 그 찬양의 바다에 떠다니며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처럼, 내 차 안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그 찬양들로 가득채우기를 바라며, 나는 내 차 안을 찬양의 소리로 가득가득 채운다.(예전에 타던 차는 너무 큰 소리 때문에 왼쪽 앞쪽 스피커가 찢어졌었다. -_-;;;;)
찬양의 바다에 빠져, 그 찬양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음악적 즐거움이다.
Praise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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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들이 음악듣는 방식은 이웃집에 큰 폐를 끼치는 방식이었다. 누가 음악을 듣던, 누구와 함께 듣던 상관 없이, 바로 옆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듣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웃집에서 자주 claim이 들어 왔고,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에게 음악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하소연도하고 명령도 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단호했다.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님께 미안하여, 헤드폰을 끼고 듣곤 했다. 헤드폰이 상당히 좋은 것이긴 했지만, 큰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음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싫어하는 장비였는데, 어머님이 마음아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미안해서, 내 나름대로 타협한 것이 헤드폰이었다.(그 결과... 내 청력에 손상이 생겼는지, 가는귀가 먹어서 왠만한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볼륨은 최대한으로 하여 가슴이 울릴 정도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음악의 세계에 빠져 들었으며, 온통 음의 바다에 푹 젖어드는 느낌을 즐기곤 했다.
요즘.. 집에서 가끔씩 찬송가를 듣는다. 그것도 컴퓨터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소리의 음악으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아내와 살다보니, 내 삶에서도 큰 소리의 음악이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음질이 형편없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찬송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하지만 요즘도 큰 음악속에 잠길 때가 있다. 그것은 혼자서 차를 타고 갈 때... 볼륨은 최대한으로 높아지고, 나는 찬양의 홍수 속에 빠진다. 내 가슴을 울리는 음율도 좋지만, 그 가사 하나하나가 내 가슴을 떨리게 하고, 내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많큼 기쁨과 감사를 준다. 그런 감격스러운 고백을 그냥 들을 수가 없다. 마치 그 찬양의 가사가 내 몸속으로 완전히 침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 온 영혼이 그 찬양의 바다에 떠다니며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처럼, 내 차 안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그 찬양들로 가득채우기를 바라며, 나는 내 차 안을 찬양의 소리로 가득가득 채운다.(예전에 타던 차는 너무 큰 소리 때문에 왼쪽 앞쪽 스피커가 찢어졌었다. -_-;;;;)
찬양의 바다에 빠져, 그 찬양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음악적 즐거움이다.
Praise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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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54:00
"주의 말씀 듣고서..."
오늘의 QT묵상 찬송(참고로 제가 사용하는 QT본문은 QT 교제인 "매일성경"을 따르며, 찬송도 "매일성경"을 따릅니다.)
**379장**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쳐도 반석위에 세운 집 넘어지지 않네
주의 말씀 듣고도 행치않는 자는 모래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칠때 모래 위에 세운 집 크게 무너지네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 위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벌주리
[후렴] 잘 짓고 잘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며 그대로 따라가는 복을 누리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본다. 그렇지 못한 자들의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경우는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 경우는 말씀은 잘 알고 있지만, 잘 알고 있다는 교만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는 것이다. 사실... 그 두 경우가 나타나는 양상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본다.
남들의 실패를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나라고 남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씀을 잘 알지만, 교만 가운데 정작 그 말씀을 놓치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주님 앞에 겸손이 얼마나 필요한지...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한 발짝도 못나가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 그래서 주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그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결국 내 인생을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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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장**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쳐도 반석위에 세운 집 넘어지지 않네
주의 말씀 듣고도 행치않는 자는 모래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칠때 모래 위에 세운 집 크게 무너지네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 위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벌주리
[후렴] 잘 짓고 잘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며 그대로 따라가는 복을 누리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본다. 그렇지 못한 자들의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경우는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 경우는 말씀은 잘 알고 있지만, 잘 알고 있다는 교만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는 것이다. 사실... 그 두 경우가 나타나는 양상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본다.
남들의 실패를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나라고 남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씀을 잘 알지만, 교만 가운데 정작 그 말씀을 놓치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주님 앞에 겸손이 얼마나 필요한지...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한 발짝도 못나가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 그래서 주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그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결국 내 인생을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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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31:00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4년전 청년부를 섬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그 전에는 없던 이상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체들을 생각할 때, 마음에 불편한 것이나, 진노나, 말씀이나 혹은 뭔가가 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무슨 근거도 없이... 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생기는 그 마음의 현상...
그 때마다 조심스럽게 그 지체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서 내 마음에 생기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 지체가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나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그것을 전달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체험을 통해서, 나는 청년부를 섬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상태를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담게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 능력이 결코 감사하거나 즐거워할 능력만은 아님을 나는 역시 체험했다. 내 마음에 한 지체가 떠오르며, 그 지체에 대해서 마음에 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 그 지체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책망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아주 많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말대로, 전해야 할 말을 전하지 않고 내 마음에 담아두었을 때, 내 스스로가 번뇌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된다. 얼마나 그 고통이 큰지 알 수 없다.
최근에도 같은 경우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지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이 내 마음 속에서 분명히 느껴졌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책망과 저주의 말을 전해야 할 것인지도 내 마음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슴이 너무 아팠고, 전하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내 마음에 너무 강했다. 그래서 불순종하며 그 말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을 불붙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고,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뼈가 녹는 것 같은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전했다. 원래는 직접 전하는 것이 아니라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에 결국 직접 대면하여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그 책망의 말씀들, 그리고 저주의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하나하나 모두 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뭉뚱그려 대충전해버렸다. (이 불순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신다면, 나는 그 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리 대충 전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가슴아픈 그 말... 그 말을 전하고 나면 내 마음이 더 아플 수 밖에 없는 그 말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입술을 통해서 전달되었을 때, 내 마음의 불같은 고통이 동시에 빠져 나왔다. 말을 전한 후,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느꼈고, 이제 내가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위의 예레미야 본문을 설명하는 설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 그 말들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 마음에 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입술에 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로요 전달자다. 만약 그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을 때,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지... 그들이 왜 그 엄청난 핍박과 저항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것과 함께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었던 것이다.
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그 지체에게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자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오늘 아침 묵상의 찬송(217장)을 그 지체에게 선물한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때 권능의 손을 내게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4년전 청년부를 섬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그 전에는 없던 이상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체들을 생각할 때, 마음에 불편한 것이나, 진노나, 말씀이나 혹은 뭔가가 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무슨 근거도 없이... 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생기는 그 마음의 현상...
그 때마다 조심스럽게 그 지체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서 내 마음에 생기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 지체가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나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그것을 전달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체험을 통해서, 나는 청년부를 섬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상태를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담게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 능력이 결코 감사하거나 즐거워할 능력만은 아님을 나는 역시 체험했다. 내 마음에 한 지체가 떠오르며, 그 지체에 대해서 마음에 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 그 지체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책망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아주 많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말대로, 전해야 할 말을 전하지 않고 내 마음에 담아두었을 때, 내 스스로가 번뇌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된다. 얼마나 그 고통이 큰지 알 수 없다.
최근에도 같은 경우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지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이 내 마음 속에서 분명히 느껴졌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책망과 저주의 말을 전해야 할 것인지도 내 마음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슴이 너무 아팠고, 전하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내 마음에 너무 강했다. 그래서 불순종하며 그 말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을 불붙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고,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뼈가 녹는 것 같은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전했다. 원래는 직접 전하는 것이 아니라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에 결국 직접 대면하여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그 책망의 말씀들, 그리고 저주의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하나하나 모두 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뭉뚱그려 대충전해버렸다. (이 불순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신다면, 나는 그 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리 대충 전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가슴아픈 그 말... 그 말을 전하고 나면 내 마음이 더 아플 수 밖에 없는 그 말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입술을 통해서 전달되었을 때, 내 마음의 불같은 고통이 동시에 빠져 나왔다. 말을 전한 후,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느꼈고, 이제 내가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읽은 신앙서적에서 위의 예레미야 본문을 설명하는 설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서 쏟아져 나온 그 말들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 마음에 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입술에 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로요 전달자다. 만약 그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을 때,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지... 그들이 왜 그 엄청난 핍박과 저항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것과 함께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었던 것이다.
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그 지체에게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자가 넘치기를 기도한다.
오늘 아침 묵상의 찬송(217장)을 그 지체에게 선물한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때 권능의 손을 내게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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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8:00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11
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카이로스...
나에게 그 카이로스가 다가오고 있다.
두렵기도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카이로스...
그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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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카이로스...
나에게 그 카이로스가 다가오고 있다.
두렵기도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카이로스...
그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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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55:00
복음을 누리는 최고의 길...
복음을 누리는 최고의 길...
복음이 관념이 아니라 믿음이 되며 삶이되는 최고의 길...
복음의 감동을 늘 새롭게하며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길...
복음이 능력이 됨을 체험하는 길...
십자가로 인해, 십자가의 사랑 하나만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길...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복음은 그것을 듣는 자에게도 복이지만, 전하는 자에게 더 큰 복이 된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 샘솟는 하나님 사랑을 본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본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식을 전하는 작업도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변호작업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그 복음으로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삶이 복음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복음으로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는지를 display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전하는 작업이다. 그 진리로 인해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내스스로 얼마나 처절하게 느끼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흉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인 그 십자가의 사랑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복음을 전하는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내 가슴에 품음으로 그 열정을 전달하는 작업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만이 인생에 있서서 중요한 일임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진정으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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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관념이 아니라 믿음이 되며 삶이되는 최고의 길...
복음의 감동을 늘 새롭게하며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길...
복음이 능력이 됨을 체험하는 길...
십자가로 인해, 십자가의 사랑 하나만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길...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복음은 그것을 듣는 자에게도 복이지만, 전하는 자에게 더 큰 복이 된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 샘솟는 하나님 사랑을 본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본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식을 전하는 작업도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변호작업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그 복음으로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삶이 복음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복음으로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는지를 display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전하는 작업이다. 그 진리로 인해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내스스로 얼마나 처절하게 느끼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흉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인 그 십자가의 사랑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복음을 전하는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내 가슴에 품음으로 그 열정을 전달하는 작업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만이 인생에 있서서 중요한 일임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진정으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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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6:00
무익한 종... 악한 종...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눅 17:10)
나는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품에 안아 주실 때, 예수님께 "저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평생의 소망이고 삶의 목표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은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인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이 부끄러운 내 모습...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은 사실 엄청난 고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자인 것이다. 스스로 무익하다고 한 것은 그 명령을 명령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에 옮겼을 뿐 스스로 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모두 주인이 생각해 내신 것들,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그저 묵묵히 순종했을 뿐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백은 사실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해 드릴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하나님께 "좋은 것"은 결국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들 뿐이다. 그러니 주님께 "유익한 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하나님께서는 지난 4년에 가까운 청년부 사역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자신있게 들고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열매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게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열매들... 하나님께 바쳐드리며 자랑스러워 함 직하게 보이는 그 열매들이 모두 좋은 열매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어떤 것들은 썩어 있고, 어떤 것들은 상해 있고, 어떤 것들은 온전한 것들이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주님께서 친히 맺으신 열매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내가 "주님을 위해" 만든 것들이었고, 주님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 열매들에는 내 인간적인 열정과 애정이 첨가된 것들이다. 그 어느 것들보다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겉으로는 정말 온전하여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내가 자랑할 만한 열매들이 얼마나 썩어있고 상해 있는지,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열매들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겉모양만 보고 하나님께 으쓱하며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낯이 뜨뜻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그 온전한 열매들조차 종인 나를 통해서, 혹은 나를 사용하셔서 맺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기어이 맺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애물 역할은 한 그런 악한 종...
최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던 매우 중대한 기도제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답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진실을 보면서 어젯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안타까움과 아픔과 부끄러움이 나로하여금 심한 수치를 느끼게 했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다.
하지만 악한 종의 모습을 지금이나마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그 심판의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날...
그날 만큼은 진정으로 주님께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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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품에 안아 주실 때, 예수님께 "저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평생의 소망이고 삶의 목표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은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인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이 부끄러운 내 모습...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은 사실 엄청난 고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자인 것이다. 스스로 무익하다고 한 것은 그 명령을 명령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에 옮겼을 뿐 스스로 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모두 주인이 생각해 내신 것들,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그저 묵묵히 순종했을 뿐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백은 사실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해 드릴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하나님께 "좋은 것"은 결국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들 뿐이다. 그러니 주님께 "유익한 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하나님께서는 지난 4년에 가까운 청년부 사역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자신있게 들고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열매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게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열매들... 하나님께 바쳐드리며 자랑스러워 함 직하게 보이는 그 열매들이 모두 좋은 열매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어떤 것들은 썩어 있고, 어떤 것들은 상해 있고, 어떤 것들은 온전한 것들이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주님께서 친히 맺으신 열매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내가 "주님을 위해" 만든 것들이었고, 주님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 열매들에는 내 인간적인 열정과 애정이 첨가된 것들이다. 그 어느 것들보다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겉으로는 정말 온전하여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내가 자랑할 만한 열매들이 얼마나 썩어있고 상해 있는지,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열매들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겉모양만 보고 하나님께 으쓱하며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낯이 뜨뜻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그 온전한 열매들조차 종인 나를 통해서, 혹은 나를 사용하셔서 맺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기어이 맺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애물 역할은 한 그런 악한 종...
최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던 매우 중대한 기도제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답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진실을 보면서 어젯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안타까움과 아픔과 부끄러움이 나로하여금 심한 수치를 느끼게 했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다.
하지만 악한 종의 모습을 지금이나마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그 심판의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날...
그날 만큼은 진정으로 주님께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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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7:00
아버지를 기억하며...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07년 7월 7일 (한국시간으로 7월 8일) 저녁 7시 30분경...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2주 전에 한국을 떠나온 터였다.
약 한 달 동안 폐암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병원에 같이 다니고, 입원하셨을 때도 늘 같이 있었다. 너무 정정하셨고, 전보다 약간 야위셨다는 느낌 외에는 암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에 계셨다.
앞으로 1년 밖에는 더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머나먼 미국으로 떠나 오면서, 혹시나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큰절로 작별인사를 드렸다. 당신 자신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을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난데없는 셋째아들의 큰절에 흠칫 놀라셨다. 그런 아버지를 더 가슴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뒤돌아 떠나 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그것이 내 생애에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다가 피를 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의사의 말이 앞으로 일 년이라고 했으니 갑자기 나빠지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더 머물게 하고 혼자서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얼마 후인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 봤지만, 주일 새벽에 떠나는 것 외에는 더 일찍 떠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청년부 토요예배는 정상적으로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 당시 목자로 있던 정봉수 형제에게 교회로 전화가 온다면 꼭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말씀 도중 교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봉수형제가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마음은 한 없이 슬펐지만, 전하던 말씀은 그대로 모두 전했다.
예배가 모두 마치고, 봉수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고속전철을 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내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그 사진, 장례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 밖에 나가서 울었던 그 사진--앞에 무릎꿇고 통곡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아픔에 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평생 단 5분도 같이 앉아 다정한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
집안의 독재자, 고독자로 늘 혼자이셨던 아버지...
Next의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아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전통적인 아버지...
평생 정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아버지의 임종이 나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그리고 상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셨다...
다행히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그토록 싫어하시던 교회에 참석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믿음을 고백하셨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렇게 말리시고, 싫어하셨던 그 아버지와 함께 동생 교회에 앉아서 예배드린 장면이다. 나로서는 평생의 기도제목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는 순서에도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자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찬송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내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셨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셨을 그 아버지...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지고, 더 친숙해지신 아버지...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아버지...
옛적 우리 선조들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부친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삼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3년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동일한 마음으로 싸이 미니홈피 대문에 걸어 놓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하는 글을 이제 내리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아버지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백... 3년 상을 맞이한 오늘... 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2주 전에 한국을 떠나온 터였다.
약 한 달 동안 폐암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병원에 같이 다니고, 입원하셨을 때도 늘 같이 있었다. 너무 정정하셨고, 전보다 약간 야위셨다는 느낌 외에는 암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에 계셨다.
앞으로 1년 밖에는 더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머나먼 미국으로 떠나 오면서, 혹시나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큰절로 작별인사를 드렸다. 당신 자신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을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난데없는 셋째아들의 큰절에 흠칫 놀라셨다. 그런 아버지를 더 가슴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뒤돌아 떠나 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그것이 내 생애에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다가 피를 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의사의 말이 앞으로 일 년이라고 했으니 갑자기 나빠지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더 머물게 하고 혼자서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얼마 후인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 봤지만, 주일 새벽에 떠나는 것 외에는 더 일찍 떠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청년부 토요예배는 정상적으로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 당시 목자로 있던 정봉수 형제에게 교회로 전화가 온다면 꼭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말씀 도중 교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봉수형제가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마음은 한 없이 슬펐지만, 전하던 말씀은 그대로 모두 전했다.
예배가 모두 마치고, 봉수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고속전철을 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내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그 사진, 장례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 밖에 나가서 울었던 그 사진--앞에 무릎꿇고 통곡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아픔에 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평생 단 5분도 같이 앉아 다정한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
집안의 독재자, 고독자로 늘 혼자이셨던 아버지...
Next의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아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전통적인 아버지...
평생 정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아버지의 임종이 나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그리고 상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셨다...
다행히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그토록 싫어하시던 교회에 참석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믿음을 고백하셨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렇게 말리시고, 싫어하셨던 그 아버지와 함께 동생 교회에 앉아서 예배드린 장면이다. 나로서는 평생의 기도제목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는 순서에도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자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찬송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내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셨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셨을 그 아버지...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지고, 더 친숙해지신 아버지...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아버지...
옛적 우리 선조들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부친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삼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3년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동일한 마음으로 싸이 미니홈피 대문에 걸어 놓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하는 글을 이제 내리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아버지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백... 3년 상을 맞이한 오늘... 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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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22:00
무제...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스 9:5-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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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20:00
예수님의 거룩...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0-12)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예수님...
거룩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분이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있던 마태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들 듣고, 주변에 살던 "죄인" "불가촉천민" "더러운 자들"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자들이 우루루 몰려 왔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상관 없이 사는 자들...
세상적 기준으로 봤을 때도 용납이 안되는 인생을 사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자들...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들...
멸시받는 자들...
그런 자들이 예수님께 몰려 왔고, 예수께서는 한 사람도 물리치지 않고,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신다. 그들과 코이노니아를 가지시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거룩이다.
그분의 거룩함은 죄를 미워하며, 죄를 거부하며, 죄와 끝까지 싸우며, 결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거룩함이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용납하며 너그러우며,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 들이는 사랑의 거룩함인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그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들로 하여금, 거북하여 피하고 싶게 만드는 거룩함이 아니라, 그 거룩에로 이끌리게 만들고, 거룩을 닮고 싶게 만들고, 그래서 거룩함을 소망하게 만드는 그런 거룩함이다.
예수님의 그 거룩함에 이끌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감행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죄인들인 것이다.
당시 거룩함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바리새인들...
그들의 거룩함은 예수님과는 정반대였다.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죄를 지으며 죄와 함께 뒹굴며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겉으로는 종교의 허위로 전락한 거룩함을 과시하며 살았다.
그들의 거룩함은 죄는 미워하지 않되, 죄인을 미워하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함은 종교적으로 자신들보다 못해보이는 자들에 대해서 한 없은 비판과 멸시를 퍼부어 댐으로, 자신들에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긋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은 결코 그 거룩성을 전염시키지 못하는 거룩이었고,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거룩이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죄인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을 보시며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라고 가슴 아파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이 없었던 것이다.
거룩... 하지만 그 거룩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바탕을 둬야 한다.
사랑으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타까움과 가슴에 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전염시켜, 그 거룩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쉽게 파멸적인 거룩, 껍데기만 남은 거룩이 되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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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예수님...
거룩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분이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있던 마태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들 듣고, 주변에 살던 "죄인" "불가촉천민" "더러운 자들"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자들이 우루루 몰려 왔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상관 없이 사는 자들...
세상적 기준으로 봤을 때도 용납이 안되는 인생을 사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자들...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들...
멸시받는 자들...
그런 자들이 예수님께 몰려 왔고, 예수께서는 한 사람도 물리치지 않고,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신다. 그들과 코이노니아를 가지시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거룩이다.
그분의 거룩함은 죄를 미워하며, 죄를 거부하며, 죄와 끝까지 싸우며, 결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거룩함이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용납하며 너그러우며,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 들이는 사랑의 거룩함인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그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들로 하여금, 거북하여 피하고 싶게 만드는 거룩함이 아니라, 그 거룩에로 이끌리게 만들고, 거룩을 닮고 싶게 만들고, 그래서 거룩함을 소망하게 만드는 그런 거룩함이다.
예수님의 그 거룩함에 이끌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감행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죄인들인 것이다.
당시 거룩함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바리새인들...
그들의 거룩함은 예수님과는 정반대였다.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죄를 지으며 죄와 함께 뒹굴며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겉으로는 종교의 허위로 전락한 거룩함을 과시하며 살았다.
그들의 거룩함은 죄는 미워하지 않되, 죄인을 미워하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함은 종교적으로 자신들보다 못해보이는 자들에 대해서 한 없은 비판과 멸시를 퍼부어 댐으로, 자신들에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긋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은 결코 그 거룩성을 전염시키지 못하는 거룩이었고,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거룩이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죄인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을 보시며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라고 가슴 아파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이 없었던 것이다.
거룩... 하지만 그 거룩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바탕을 둬야 한다.
사랑으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타까움과 가슴에 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전염시켜, 그 거룩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쉽게 파멸적인 거룩, 껍데기만 남은 거룩이 되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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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05:00
그리스도의 피, 근신, 회개...
어제 설교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토록 알려주고 싶어했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제사... 그리고 그 결정체인 그분의 보혈...
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시작할 때, 공교롭게도 묵상 찬송이 찬송가 184장이었고, 아침에 학교에 오는 차에서 우연히 들려온 영어 찬양도 역시 똑 같이 184장이었다.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죄속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명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근신하며, 절제하며,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주는 근신의 기간이다... 나를 즐거워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만남 외에 어떤 만남이나 모든 연락을 끊고, 다른 어떤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주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가운데, 그분께 무릎꿇고, 지존자 되신 그분과 그분 앞에 단독자로 선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주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잡음없이 선명하게 듣기로 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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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시작할 때, 공교롭게도 묵상 찬송이 찬송가 184장이었고, 아침에 학교에 오는 차에서 우연히 들려온 영어 찬양도 역시 똑 같이 184장이었다.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죄속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명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근신하며, 절제하며,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주는 근신의 기간이다... 나를 즐거워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만남 외에 어떤 만남이나 모든 연락을 끊고, 다른 어떤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주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가운데, 그분께 무릎꿇고, 지존자 되신 그분과 그분 앞에 단독자로 선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주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잡음없이 선명하게 듣기로 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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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50:00
"뜻을 정한 다니엘"-김회권 목사 설교
김회권 목사님... 오랫만에 그분의 설교가 듣고 싶어졌다.
영문과 10년 선배...
1991년 어느 봄날 캠퍼스에서 "광진형제!"라고 이름을 부르시며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 오셨던 그분...
나에게 기독교는 매우 매력적인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신 그분...
멋도 모르고 따라간 1991년 여름수련회에서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도록 하신 분...
그리고 ESF라는 선교단체에서 오랜기간 동안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주시고 신앙의 거의 모든 기반을 닦아 주신 분...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로마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시고자 그토록 애쓰셨던 분...
지난 2007년 숭실대 연구실로 찾아 뵈었을 때, 책을 한 아름 안겨 주시면서, 책을 담아갈 가방까지 사 주시며 공부하는 설교자가 되어라고 격려하신 따뜻한 분...
나의 멘토.. 은인... 지금까지 내 신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나의 스승...
그분은 언제나 내가 닮고 싶은 믿는자의 표상이다.
그분은 아직도 내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계시며, 내 평생에 언제든지 찾아가 배울 스승이다.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 동분서주 열심히 사역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분이 매우 보고 싶은 오늘... 온라인을 뒤져서 여기저기에 있는 그분의 설교를 들었다...
5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젊은이보다 더 젊음을 간직하신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20년 전 처음 뵈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거의 변함이 없으신 그 모습...
김회권 목사님과 같은 이 시대의 스승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아래 설교는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다녔던 논현동의 서울영동교회의 아침예배 때 2008년 1월에 하신 설교말씀이다. 같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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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과 10년 선배...
1991년 어느 봄날 캠퍼스에서 "광진형제!"라고 이름을 부르시며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 오셨던 그분...
나에게 기독교는 매우 매력적인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신 그분...
멋도 모르고 따라간 1991년 여름수련회에서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도록 하신 분...
그리고 ESF라는 선교단체에서 오랜기간 동안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주시고 신앙의 거의 모든 기반을 닦아 주신 분...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로마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시고자 그토록 애쓰셨던 분...
지난 2007년 숭실대 연구실로 찾아 뵈었을 때, 책을 한 아름 안겨 주시면서, 책을 담아갈 가방까지 사 주시며 공부하는 설교자가 되어라고 격려하신 따뜻한 분...
나의 멘토.. 은인... 지금까지 내 신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나의 스승...
그분은 언제나 내가 닮고 싶은 믿는자의 표상이다.
그분은 아직도 내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계시며, 내 평생에 언제든지 찾아가 배울 스승이다.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 동분서주 열심히 사역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분이 매우 보고 싶은 오늘... 온라인을 뒤져서 여기저기에 있는 그분의 설교를 들었다...
5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젊은이보다 더 젊음을 간직하신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20년 전 처음 뵈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거의 변함이 없으신 그 모습...
김회권 목사님과 같은 이 시대의 스승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아래 설교는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다녔던 논현동의 서울영동교회의 아침예배 때 2008년 1월에 하신 설교말씀이다. 같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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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19:00
동부여행2-Adventure 1
이번 동부여행을 요약하자면, 어려움(고생), 극기훈련, 만남 이 세 단어에 모두 집약된다. 계속해서 터지는 일련의 문제들... 그리고 헝그리 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걸어다니면서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일정, 그리고 진흙속의 보석과 같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 있었던 믿음의 지체들과의 만남 그리고 교제...
오늘은 그 중 여행중에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서 일부 나누고자 한다.
13일 여행 첫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목장 식구 중 한 분에게 부탁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3시 50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밥을 급히 먹고 집에 들러 짐을 싣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작별인사를 나눈 후, 표를 끊고 들어간 Security Check... 모두 8개가 넘는 가방들 중에서 한 개가 보안 검색에 걸렸다.(이후로도 보안 검색에 안 걸리고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_-;;;;) 거기서 반찬으로 들고간 팩을 빼앗기고 검색을 무사히 통과했다. 빼앗긴 반찬 생각에 분하긴 했지만 여행을 시작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게이트로 가서 기분 좋게 기다렸다. 하지지만 3시 50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한번 연기 되었고, 또 연기되어 8시 정도에 그 비행기를 운항할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 댈러스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어서, 항공사 고객센터에 여러번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아보다가 결국에는 댈러스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날 6시 조금 넘어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로 필라델피아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문제는 숙소문제였는데, 게이트의 항공사 직원은 날씨 문제로 운항에 차질이 생겼다고 알렸지만, 전화로 확인해 본 결과 날씨가 아니라 정비 문제라고 말해 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숙소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많이 늦게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댈러스로 향했다. 오랫만에 타본 비행기라서 그간 바뀐 분위기를 잘 몰랐었는데, 최근 바뀐 baggage 유료화 정책으로 인해, 비행기 안 짐 넣는 칸이 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했다. 원래 우리 가족 위의 짐칸이 비어 있어야 마땅한데, 이미 다 차 있었고, 비행기 앞좌석에만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도 타야할 승객들은 많은데... 어쨋든 짐을 그냥 들고 있을 수 없어서 비즈니스석 위의 짐칸에 가방 하나를 올려 두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릴 때 보니, 그 자리에 가방이 있긴 한데, 색과 모양이 비슷할 뿐, 다른 사람 것이었다. 그 가방의 원래 주인이 자기 것인줄 알고 우리 가방을 그냥 들고 내린 것이었다. 그 짐에 아무런 표기도 없고, 우리 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을 때, 마침 같은 비행기를 탔던 교회의 한 형제 한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 주셨다. 나는 일단 그 가방 주인이 baggage claim에 나가 있을지 모르니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을 찾고, 그 동안에 그분은 항공사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항 전체에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분도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시간이 없었지만, 비행기를 놓칠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baggage claim에서 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했지만, 내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거기에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미 체크아웃 했기 때문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면서 guard가 나를 가로 막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있는 사이에 그 형제는 공항과 항공사 관계자들과 때로는 전화로 때로는 직접 만나서 재촉하면서 동분서주 하였다. (만약 하연엄마만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휴...) 마침내 가방을 가져간 사람이 나타났고, 나와 만나서 가방을 교환할 수 있었다.
한 바탕 야단법석을 떤 후에, 우리는 겨우 공항을 빠져 나왔고, 8개가 넘는 짐들을 들고 먼길을 걸어 가서 찾은 정류장에서 호텔셔틀을 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공항 바깥은 이미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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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중 여행중에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서 일부 나누고자 한다.
13일 여행 첫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목장 식구 중 한 분에게 부탁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3시 50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밥을 급히 먹고 집에 들러 짐을 싣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작별인사를 나눈 후, 표를 끊고 들어간 Security Check... 모두 8개가 넘는 가방들 중에서 한 개가 보안 검색에 걸렸다.(이후로도 보안 검색에 안 걸리고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_-;;;;) 거기서 반찬으로 들고간 팩을 빼앗기고 검색을 무사히 통과했다. 빼앗긴 반찬 생각에 분하긴 했지만 여행을 시작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게이트로 가서 기분 좋게 기다렸다. 하지지만 3시 50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한번 연기 되었고, 또 연기되어 8시 정도에 그 비행기를 운항할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 댈러스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어서, 항공사 고객센터에 여러번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아보다가 결국에는 댈러스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날 6시 조금 넘어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로 필라델피아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문제는 숙소문제였는데, 게이트의 항공사 직원은 날씨 문제로 운항에 차질이 생겼다고 알렸지만, 전화로 확인해 본 결과 날씨가 아니라 정비 문제라고 말해 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숙소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많이 늦게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댈러스로 향했다. 오랫만에 타본 비행기라서 그간 바뀐 분위기를 잘 몰랐었는데, 최근 바뀐 baggage 유료화 정책으로 인해, 비행기 안 짐 넣는 칸이 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했다. 원래 우리 가족 위의 짐칸이 비어 있어야 마땅한데, 이미 다 차 있었고, 비행기 앞좌석에만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도 타야할 승객들은 많은데... 어쨋든 짐을 그냥 들고 있을 수 없어서 비즈니스석 위의 짐칸에 가방 하나를 올려 두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릴 때 보니, 그 자리에 가방이 있긴 한데, 색과 모양이 비슷할 뿐, 다른 사람 것이었다. 그 가방의 원래 주인이 자기 것인줄 알고 우리 가방을 그냥 들고 내린 것이었다. 그 짐에 아무런 표기도 없고, 우리 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을 때, 마침 같은 비행기를 탔던 교회의 한 형제 한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 주셨다. 나는 일단 그 가방 주인이 baggage claim에 나가 있을지 모르니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을 찾고, 그 동안에 그분은 항공사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항 전체에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분도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시간이 없었지만, 비행기를 놓칠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baggage claim에서 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했지만, 내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거기에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미 체크아웃 했기 때문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면서 guard가 나를 가로 막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있는 사이에 그 형제는 공항과 항공사 관계자들과 때로는 전화로 때로는 직접 만나서 재촉하면서 동분서주 하였다. (만약 하연엄마만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휴...) 마침내 가방을 가져간 사람이 나타났고, 나와 만나서 가방을 교환할 수 있었다.
한 바탕 야단법석을 떤 후에, 우리는 겨우 공항을 빠져 나왔고, 8개가 넘는 짐들을 들고 먼길을 걸어 가서 찾은 정류장에서 호텔셔틀을 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공항 바깥은 이미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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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05:00
동부여행1-旅毒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12일간 동부여행을 다녀왔다.
예정보다 하루가 늦은 24일 오스틴 공항에 도착하고, 라이드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도착한 순간,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휴~~"
많은 의미를 갖는 그 탄식 이후 그 동안 쌓였던 여독(旅毒)이 몰려왔다.
24일 저녁, 그리고 25일 거의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저녁에 있었던 목장모임도 간신히 다녀왔다. 물론 목장모임을 통해서 영혼의 피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까지 많이 풀리고 회복되긴 했지만... 여독은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어 지금까지도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2일 저녁... 워싱턴 DC 여행을 마치고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필라델피아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 대로 좋은 호텔을 미리 예약했었고, 그 호텔에서 푹 쉴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워 호텔 로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원이 하는 말은 그날 overbooking이 되어서 방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 호텔에서 다른 곳의 방을 잡아 줘서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그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약 23분 정도 북쪽에 위치한 Chestnut Hill Hotel... 직원의 말로는 view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갔는데... 기대와는 달리 호텔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아니 그보다도 못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프론트 직원... 한참 후에야 방을 배정받고, 건물 뒤에 주차한 뒤, 들어간 방... 냄새.. 허름함... 위험해 보이는 동네임에도 창문 잠금장치는 아예 없어서, 2층에 위치한 방으로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 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 올 수 있는 허술한 보안...
가장으로서 위험을 느끼며,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날은 바로 내 생일날이었다. 음력 5월 12일...
허름한 여인숙같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허름한 아침식사로 대충 때우고, 정리한 뒤 Rent Car 회사로 향했다. 12시까지 차를 돌려 줘야 했기 때문에 20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1차로의 길... 어디를 보나 2차로를 찾을 수 없는 필라델피아의 도로 상태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내 앞에 달려가는 버스 한 대가 거의 모든 정류장마다 멈춰서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그 길...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많고, 시야도 확보가 되지 않아서 졸졸 따라가야 했던 그 답답함...
Rent Car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11분이 다 되어 있었다. (예정 시각보다 30분 지나서까지는 Grace time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치의 렌트비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졸였는지...
다행히 추가비용 없이 무사히 반납하고, 거기서 만나기로한 후배와 조우했다. 원래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후배와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 예정시간은 4시 50분...
후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공항... 정시에 출발한다 하더라도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터라 나는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갑자기 말도 없이 Gate가 바뀌더니, 출발시간이 5시 30분으로 미뤄지고, 나중에는 8시 30분으로 연장되었다. 원래 8시에 시카고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었었는데, 불가능해졌다. American Airline 고객센터에 전화를 여러번 하고, 수많은 경우수 수 가운데서 결정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 연속되었고, 급기야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한시 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토요일 오후까지 오스틴에 갈 방법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급히 공항근처의 호텔을 알아봤고,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가장 싼 (그렇지만 기존에 머물렀던 좋은 호텔보다 결코 가격이 낮지 않은) 호텔을 잡았다.
다행히 8시 반에 비행기는 출발했고, 시카고에 10시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나온 셔틀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면서 바로 직전에 토네이도가 휩쓸고간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공항 주변의 경치를 봤다... '진짜 토네이도가 오긴 왔었나?' (그 다음날 공항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는지... 그래서 거의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었었는지... 그 전날 비행기로 시카고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시카고의 호텔은 그 전날 호텔보다 더 열악했다. 내 평생에 그런 호텔에 머무르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싸구려 호텔... 목이 아플 정도로 냄새가 진동하는 방, 너무나 허름한 그 방과 건물.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지는 카펫... 그런 곳에 내 가족을 머물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내 41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 후 다행히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동부여행... 대부분 도시들을 돌아 봤던 그 시간들... 그 여행은 adventure였고, 극기훈련이었다. 서부를 여행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힘든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어려운 여정이었다. 그 여정 가운데 축적되어 간 여독은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순간 함께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신실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무사히 오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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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하루가 늦은 24일 오스틴 공항에 도착하고, 라이드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도착한 순간,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휴~~"
많은 의미를 갖는 그 탄식 이후 그 동안 쌓였던 여독(旅毒)이 몰려왔다.
24일 저녁, 그리고 25일 거의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저녁에 있었던 목장모임도 간신히 다녀왔다. 물론 목장모임을 통해서 영혼의 피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까지 많이 풀리고 회복되긴 했지만... 여독은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어 지금까지도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2일 저녁... 워싱턴 DC 여행을 마치고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필라델피아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 대로 좋은 호텔을 미리 예약했었고, 그 호텔에서 푹 쉴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워 호텔 로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원이 하는 말은 그날 overbooking이 되어서 방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 호텔에서 다른 곳의 방을 잡아 줘서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그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약 23분 정도 북쪽에 위치한 Chestnut Hill Hotel... 직원의 말로는 view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갔는데... 기대와는 달리 호텔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아니 그보다도 못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프론트 직원... 한참 후에야 방을 배정받고, 건물 뒤에 주차한 뒤, 들어간 방... 냄새.. 허름함... 위험해 보이는 동네임에도 창문 잠금장치는 아예 없어서, 2층에 위치한 방으로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 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 올 수 있는 허술한 보안...
가장으로서 위험을 느끼며,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날은 바로 내 생일날이었다. 음력 5월 12일...
허름한 여인숙같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허름한 아침식사로 대충 때우고, 정리한 뒤 Rent Car 회사로 향했다. 12시까지 차를 돌려 줘야 했기 때문에 20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1차로의 길... 어디를 보나 2차로를 찾을 수 없는 필라델피아의 도로 상태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내 앞에 달려가는 버스 한 대가 거의 모든 정류장마다 멈춰서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그 길...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많고, 시야도 확보가 되지 않아서 졸졸 따라가야 했던 그 답답함...
Rent Car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11분이 다 되어 있었다. (예정 시각보다 30분 지나서까지는 Grace time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치의 렌트비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졸였는지...
다행히 추가비용 없이 무사히 반납하고, 거기서 만나기로한 후배와 조우했다. 원래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후배와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 예정시간은 4시 50분...
후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공항... 정시에 출발한다 하더라도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터라 나는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갑자기 말도 없이 Gate가 바뀌더니, 출발시간이 5시 30분으로 미뤄지고, 나중에는 8시 30분으로 연장되었다. 원래 8시에 시카고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었었는데, 불가능해졌다. American Airline 고객센터에 전화를 여러번 하고, 수많은 경우수 수 가운데서 결정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 연속되었고, 급기야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한시 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토요일 오후까지 오스틴에 갈 방법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급히 공항근처의 호텔을 알아봤고,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가장 싼 (그렇지만 기존에 머물렀던 좋은 호텔보다 결코 가격이 낮지 않은) 호텔을 잡았다.
다행히 8시 반에 비행기는 출발했고, 시카고에 10시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나온 셔틀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면서 바로 직전에 토네이도가 휩쓸고간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공항 주변의 경치를 봤다... '진짜 토네이도가 오긴 왔었나?' (그 다음날 공항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는지... 그래서 거의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었었는지... 그 전날 비행기로 시카고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시카고의 호텔은 그 전날 호텔보다 더 열악했다. 내 평생에 그런 호텔에 머무르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싸구려 호텔... 목이 아플 정도로 냄새가 진동하는 방, 너무나 허름한 그 방과 건물.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지는 카펫... 그런 곳에 내 가족을 머물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내 41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 후 다행히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동부여행... 대부분 도시들을 돌아 봤던 그 시간들... 그 여행은 adventure였고, 극기훈련이었다. 서부를 여행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힘든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어려운 여정이었다. 그 여정 가운데 축적되어 간 여독은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순간 함께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신실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무사히 오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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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