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복이 되려면...

오늘 QT말씀은 열왕기상 10:14-29...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절정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아버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충성, 그리고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께 드렸던 믿음과 헌신과 겸손...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최고의 축복을 약속하셨다.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1-13)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해서 받는 것이다.

어쨋든 솔로몬이 누리는 무한한 지혜와 엄청난 부와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제목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느낄 수 있는 뉘앙스는 참 묘하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고 있는 그 가운데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그 복을 받고 누리는 솔로몬에 대해서, 그 마음의 중심을 묘사하기를 거부한다. 그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렸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인지를 주목할 뿐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솔로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은 그에게 저주가 되었다. 그 넘치는 축복 가운데 그의 영혼은 더욱 빈곤해져 간 것이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하나님의 복이 더 해질수록 그가 더욱 깨달은 것은 "헛되다"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물질적 축복과 권력은 그의 마음을 더 텅비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선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받는 인간이다. 솔로몬의 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에서 비롯된다. 마치 아담이 에덴에서 베풀어 주신 그 엄청난 축복을 저주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다. 그 축복이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며, 첫 마음을 잃게 하고, 결국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돌이키게 만들어 버렸다. 전도서를 통해서 스스로 고백하듯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 "헛됨"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지만, 스스로 그 길로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하지만, 진정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복을 내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독점하며 누리려고 하는 순간, 내가 저주의 길로 들어 설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면서도, 그 복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 그것을 다시 하나님을 위해 돌릴 줄 아는 그런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자세인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직후에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2-23)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해석되고 있는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 유대의 격언에서 나온 말씀이다.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것은 당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자선에 대한 격언이었다. 가난한 자를 보고 그들을 돌볼 줄 아는 자들은 그 마음이 밝아진다는 뜻이다. 눈이 나쁘다는 것은 가난한 이웃을 돌아볼 줄 모르는 자라는 뜻이고, 그런 자들은 그 마음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예수님 당신께서 제자들이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신 것이다.

만약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축복을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그 사회의 고아와 과부를 위해 썼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고, 스스로 그 부를 온전히 누리기를 포기하고 솔로몬 차원에서의 불편과 가난(?)을 감수했다면, 어땠을까? 단언하건데, 그가 죽고난 후 백성들로부터 온 그 불평은 없었을 것이며, 나라는 둘로 나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겸손한 마음과 가난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자신은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늘 일깨웠을 것이고, 우상에게 그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복을 복으로 누릴 줄 아는 것, 복을 받으면서도 가난과 겸손을 유지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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