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위기

어제, 사무실을 다시 배치했다. 
창고 분위기가 나던 것을 연구실 분위기로 바꿨다. 가구와 모든 것을 새로 배치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창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깥 시원한 바람이 직접 나에게 오도록 해서 좋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바로 숲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는 것이 좋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리움...

문득... 어스틴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내 삶을 풍요롭게하고 감사하게 만들어 줬던 고마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평생에 남을 내 추억의 커다란 일부는 바로 그들과 만들어 갔던 기억들이 아닐까?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보고 싶다.


그 사랑하는 영혼들 중에 특히 한 사람이 많이 보고 싶고 생각난다.
맑고 깨끗한 가운데 유난히 상처가 많던 그 영혼...
순수한 그 마음에 세상의 풍파가 큰 생채기를 많이 냈지만, 그 순수함만은 결코 잃지 않았던 그 영혼...
비틀거리면서도 주님을 붙잡고, 결코 그 분을 부인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영혼...
악에 둘러 싸임으로 그 자신도 악이 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지만, 그 거대한 악 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그 중심 깊숙이 선함을 가지고 있던 영혼...
여러모로 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영혼...

그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내 마음을 가득가득 차고 넘친다. 도와주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상처만 주었기에...

생면 부지의 땅에서 홀로 하루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그를 생각한다.

주님의 은혜가 그와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돌보심이 그와 늘 함께 하시기를...
그의 인생 끝날 때까지 주님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으로 인해 그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기를...
주님의 말씀이 그 영혼에 생수처럼 쏟아지기를...

정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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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없는 자의 비밀

능력이란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것과 남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같은 일을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는 것 두 가지를 포함한다. 대단하고 큰 일은 고사하고 사소한 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낑낑 거리며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아침부터 나와 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일함에도 밤에 오피스를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뭔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한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흔히들 여자에게 외모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남자에게는 능력이라고들  말한다.(여자에게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남자로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자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일 하는 만큼 뭔가를 얻고 이룩해 내는 개미보다도 못한 자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자괘감, 혹은 자기 모멸감이다. 그리고 그것을 뒤따라 오는 것은 절망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 경우에는 자기 모멸감과 절망은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의 자존감이 내 능력이나 소유, 혹은 성취나 내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1992년 어느 날 서울대 총장잔디 근처의 벤치에서 이미 던져 버렸다. 내 자존감은 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그분이 내 자존심의 근거이다.


사실, 나는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다른 것은 잘 할 수 있지만, 공부만은 잘 할 자신이 없었던 나를 그 길로 부르신 것이 하나님이셨다. 그분의 부르심만을 좇아서 여기까지 왔다.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 섰기 때문에, 내 능력으로는 매우 작은 것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내 능력과 성취의 크나큰 간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셨다. 그리고 그 성취를 내 대신 이뤄 주셨고, 그 성취를 마치 내가 이룬 성취인양 포장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내 능력에 대한 절망은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것이라 하나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놀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금쯤이면 적응이 될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그분의 역사와 능력은 늘 내 기대를 뛰어 넘는다. 그게... 참 재미있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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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현선생님 1주기 추모식



오늘 2011년 7월에 작고하신 신광현선생님 추모식이 있었다. 80학번으로서 나보다 9년 선배이신 선생님. 한창 나이에 위암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죽음을 언타까와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분이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사람들이 몰려와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분을 기억하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슬퍼하는 것은 그분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서울대에 교수로 처음 부임하셔서 개설하셨던 첫 전공과목인 중세영문학시간에 보여 주셨던 학자로서의 매력,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요 남학생들의 감탄의 대상이었던 그 옷맵시와 멋 그리고 훤칠한 키(그 당시 과 사무실에서 일하시던 결혼한 여직원분이 '그분을 볼 때마다 가슴떨려서 말 한 번 못 걸어 봤다'고 했었다.), 친형같은 푸근함으로 감싸 안으시던 그 따뜻한 마음, 티없는 소년같았던 해맑음, 그러면서도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겸손함, 압구정동이 집이고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중형차를 타시던 부유한 집안의 배경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셨지만 그 온 몸에서 느껴졌던 소탈하심. 그 모든 것이 주변 사람의 감탄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모든 것 보다도 그분이 가졌던 학문과 세상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탐구, 그리고 인간을 향한 크신 사랑이 바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분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분의 수업을 통해서 지식 뿐만 아니라 인간을 배우고 사랑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것이 학생들을 다른 차원의 삶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오늘 추모사에서 인문대 학장이신 배영수 선생님께서 하신 "여운"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남기고 싶어서 남기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떠난 자리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여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리고 사랑. 학생들에 대한 애정. 그것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참으로 큰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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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oney Can't Buy: The Moral Limits of Markets by Michael Sandel



방금 Michael Sandel의 What Money Can't Buy: The Moral Limits of Markets를 다 읽었다. 올해 출판된 책으로 우리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의 책이다. 전공책들을 읽느라 너무 바빠서 도저히 틈이 안 났지만, 그래도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전철을 오가며 틈틈이 읽어 오늘에야 읽기를 마친 것이다.

Sandel이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시장 메커니즘이 언제나, 그리고 어느 분야에나 최선의 시스템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특별히 후반에 갈수록 시장의 논리는 삶의 여러 분야에 파고 들었다. 심지어 "결혼시장"이라는 말이 전혀 거부감이 없이 사용될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에 시장 메커니즘은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Sandel은 이 책에서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묻고 그 현상을 살펴보고 있다.

학자인 나로서는 Sandel이 보다 더 깊이 있고 치열하게 글을 쓰지 않고, 가볍고 쉽지만 깊이가 없는 책을 저작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스스로는 public philosopher로 규정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학자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글을 쉽고 재미있게 씀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들로 하여금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Sandel이 던지는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라는 경쟁상대가 있었고, 어느 시스템이 더 우월한가에 대해서 스스로를 입증해야했고, 자본주의는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라는 비교대상을 통해서 평가되었다. 하지만 구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로 인정되었고, 그 이후 자본주의는 유일한 "진리"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항상 옳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가운데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인 시장 메커니즘 역시 "진리"로서 인류가 가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최고의 시스템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그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그 전에는 적용되지 않던 많은 영역으로 시장 메커니즘이 적용으로 이어졌다. Sandel은 공항이나 놀이공원 등에서 돈을 더내면 티켓을 사러 줄을 설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게하는 제도, 시민권 판매, 몸무게를 줄이면 돈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 부자 자녀의 대학입학 허가, 돈으로 사는 친구관계, 선물의 현금화, 죽음의 상품화, 학교와 감옥까지 침투한 광고 등등 많은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70, 80년대 급증한 공공영역 혹은 개인영역에의 시장 메커니즘의 침투를 보여준다.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 즉 효율성의 극대화를 그 논리로 내세우지만, Sandel이 보여주는 것은 시장 메커니즘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 뜨릴 뿐만 아니라, Civic virtue(혹은 civic spirit)을 퇴보하게 만들고, 도덕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소기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의 헌혈제도를 비교하면서 헌혈을 100% 자원으로 받는 영국의 현혈 비율이나 헌혈된 혈액의 질이 돈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미국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시장 메커니즘이 적용되는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 더 많은 헌혈이 되고 있으며, 더 건강한 사람들이 헌혈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예들을 통해서 시장 메커니즘이 모든 경우에 만능이라는 생각은 허구에 불과함을 일깨운다.


더 나아가 시장 메커니즘에 맞지 않는 공공의 영역에 그 시스템을 적용시켰을 때,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다시 시장 메커니즘을 제거하려고 할 때, 원상태로 복구가 매우 힘든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시장 만능주의가 얼마나 큰 폐해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적용을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가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참여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Such deliberations touch, unavoidably, on competing conceptions of the good life. This is terrain on which we sometimes fear to tread. For fear of disagreement, we hesitate to bring our moral and spiritual convictions into the public square. But shrinking from these questions does not leave then undecided. It simply means that markets will decide them for us. This is the lesson of the last three decades. The era of market triumphalism has coincided with a time when public discourse has been largely empty of moral and spiritual substance. Our only hope of keeping markets in their place is to deliberate openly and publicly about the meaning of the goods and social practices we prize. 


Sandel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가치, 도덕을 다루면서 왜 그것이 도덕적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글 전체적으로 그의 입장은 utilitarian의 입장이다. 최고의 효용성이 가장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입장을 취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은 moral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논조가 효용성으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morality가 civic virtue의 중요한 기틀이 된다면, 그 부분을 더 깊이 다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공격하고 있는 시장 메커니즘과 postmodernism의 논리가 어떻게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데 서로 promotion하는지, 그리고 postmodernism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moraliity를 상대화 할뿐만 아니라 그 상대화 작업을 통해서 무력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틈을 시장 메커니즘이 파고 들게 되었는지를 살폈어야 더 설득력있고,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 되었을 것이다.

또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주요 논점의 대상은 아니지만, 시장 메커니즘이 적용될 만한 곳이라고 하는 그런 영역에서 진정으로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공공영역에서 보는 그런 폐해가 그곳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이 블로그의 어딘가에서 자세하게 썼던 것처럼, 과도한 임금과 소득격차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고, 앞으로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이 때에, 과연 시장 메커니즘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 큰 회의가 들 때가 많이 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그가 한 가지 중요한 factor를 애써 무시함으로써 논의를 복잡하게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그가 왜 하나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애써 외면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글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상대주의의 입장에서의 공격에 대항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이마에 회사 광고를 문신으로 새겨넣는 행위를 비판하는 근거는 그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근거로 비판할 때 가장 강력한 논리가 설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근거를 회피한 채, 다른 논리를 대려 하지만, 논리성이 매우 떨어지는, 그래서 저자의 개인적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치 천동설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복잡한 이론들을 개발해야 했던 것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단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처럼, 분명하고 명백한 근거를 애써 외면한 결과 이 글은 쓸데없이 여러 말로 설명해야하는, 그것도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논리를 개발해야 했던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많이 있는 글이지만, Sandel의 주장은 우리 모두가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는 중요한 점이라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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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But I discipline my body and keep it under control, lest after preaching to others I myself should be disqualified." (고전 9:27)

교회 내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던 자로서 가장 두려운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이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이 자신의 삶이요 신앙의 현주소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자신의 평가에 대해 심한 거품이 있음에도 남도 속이고 스스로도 속는 매우 어리석은 짓을 범하기가 쉬운 것이다. 나 또한 거기에서 절대 예외가 아니다. 내 삶이 얼마나 내 생각, 사상,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른다. 내 위치가 만든 포장에 내가 속는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벌거벗겨진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창피할 것인가?
바울은 그점을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 자신의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은 구원으로,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로 하여금 그 스스로를 끊임 없이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삶을 추스리게 한 것이다. 바로 그런 점이 그를 진정으로 위대한 사도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지만, 내 개인을 평가하실 때는, 내 말보다, 내 가르침보다, 내 삶과 행동을 보신다. 그것이 바로 내 믿음의 현주소인 것이다. 내 행동이, 내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이라면, 나는 언제든지 내쳐질 것이라는 두려움 가운데서, 은총과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내 스스로를 control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내 삶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내게 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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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지난 얼마의 기간 동안 나에게 개인 묵상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나를 준비시키신 뒤 주일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인증하셨다.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diligently seek me will find me. (잠 8:18)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 주일설교 말씀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계시는 것이 피부에 느껴지며, 참 두려워질 때가 있다. 지난 주일, 바로 그런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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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아침부터 밤까지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지내는 연구실...
하루 종일 혼자서 읽고 쓰고, 인터넷 서핑하고...

생명이라고는 이따금 들어오는 모기들과 파리들 뿐인 연구실에 화분을 하나 갖다 놓았다.
연구실이 새로지은 건물에 있어서 새집에서 나는 냄새가 나는데, 환기도 한계가 있어서 그 냄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까해서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나 외에 한 생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너무 좋다. 말도 없고, 조용히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생명이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위안이 되고,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든다.
내 방에서 안 좋은 냄새만 흡수하지 말고, 햇볕도 많이 받아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창가에 두었다.

감사한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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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lessness...

It's not knowledge of God that I need but following Him.
It's my heart... It's my heart... that God is seeking not the heartless religious behaviors and offerings.

 최근 내 삶을 보면서 불현듯이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적다는 것이다.
행위는 많이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마음, 간절한 사랑이 담겨있지 않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을까? 어떤 분이 말한 대로 그것은 "painted lie"에 불과한데, 그것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을까?

어느새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식은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나누는 나눔이 없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영향인 것 같다.

동역자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없이 살아 온 지난 일년의 결과는 바로 heartlessnes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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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델리 이탈리아 감독...

오늘 새벽 3시 30분... 눈을 비비고 일어나 TV 앞에 앉았다. 유로 2012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
그 동안 바빠서 단 한 게임도 못봤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결승은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 없어서, 좀 무리했다.
게임은 스페인의 가공할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수비축구의 대명사인 이탈리아가 4대0으로 졌다. 스페인은 막강했고, 빈틈이 없는 반면, 이탈리아는 너무 운이 없었다. 스페인보다 하루를 덜 쉰 덕에 많이 피로해 있었고, 선수들의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절대 4대0으로 질 팀이 아닌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의 예술적인 축구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즐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탈리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경기가 끝난 후 그라운드의 유일한 흑인 선수였던 "악동"으로 유명한, 준결승의 영웅 이탈리아의 발로텔리는 자신의 화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런 그에게 이탈리아 감독인 프란델리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상대에게 너희가 더 잘했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해라.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성장한다."


참 멋있는 감독의 멋있는 조언이다. 패배와 실수는 우리 삶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로부터 성장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프란델리 감독은 발로텔리에게 우승 이상의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나 승리를 원한다. 성공을 원한다. 하지만, 패배할 때, 그것을 인정하고, 그 패배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 바로 그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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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감사...

주일인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음력으로 생일을 쇠기 때문에, 한 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아이들이 내 생일을 물어본다.
"When is your birthday this year?"
"I don't know! I didn't check."
"How come you don't even know your own birthday?"

하지만 이내 아이들은 내 생일을 알아 내고, 마크한다. 생일 한달 전쯤부터, 아이들에 계속 물어오기 시작한다.
"What do you want for your birthday?"
"I don't know."
"What is it? Please think about it."
"Yes..."

생일이 가까와 질수록 질문은 더 잦아진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는 나에게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저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커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인 것을...

하연이와 예연이가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한다. 낌새로봐서 생일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는 것 같다. 특히 예연이가 자주 선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천기"를 누설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빠 생일이 재미 있는가보다...

어제, 주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이 나에게 뽀뽀하며 생일축하한다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해준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선물 공개시간... 아내와 아이들 두 명이서 준비한 선물은 갯수를 셀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특히 아이들은 아빠 선물을 사고 또 사도 뭔가 부족한 듯 하여 계속 선물 갯수를 추가했다. 볼펜, 포스트잇부터 시작해서, 노트, 자동차 방향제, 건전지, 사탕, 애프터 쉐이브 로션, 독서대 등등등등.... 하나하나 선물 포장한 정성이 참으로 기특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준비하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아빠 생일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보면서, 컴퓨터에 어느 정도 자신 있는 나마저도 그 정성과 디자인에 놀란다..

아내와 아이들이 공동으로 만든 카드(거의 예연이의 작품), 그리고 하연이의 놀라운 카드(정말 멋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예연이의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 생일 축하카드... 몇 주일에 걸쳐서 정성스럽게 만들고 또 만든 그 사랑이 듬뿍 담긴 카드들을 보면서 감격한다.

생일날, "What do yo want for your birthday?"라고 물어봐 주는 내 딸들이 있다는 것, 아빠의 생일을 기대하며 기말시험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정성을 기울여 몇 주 동안이나 카드를 만드는 그런 아이들이 내게 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뽀뽀하며 "Happy birthday, Daddy!"라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케익과 진수성찬을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내가 있다는 것...
참...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시인인 예연이가 내 생일카드에 쓴 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For a dad
You're not so bad
Always fun
And helps me a ton
You work for our family,
That's why we live happily.
I'll always try to follow your way,
I'll never forget
To wish you a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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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5편


고백이 참... 아름답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찌로다!"(시 145)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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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 144:3-4)


시편 기자의 이 탄식이 곁들여진 감탄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올 수 있는 고백이다. 그것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잘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에 대한 지식에 더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자이고, 흉악한 자이다. 내가 어떤 자인지를 더 분명하게 아는 것은 믿음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가 0를 향해 한 없이 수렴해 가는 것을 실제로 느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시편 기자의 진정한 고백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그 경험에서 나온다. 그분의 가치, 그분의 크기가 무한대로 수렴해 가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경험하게 될 때, 그 분이 나를 "생각하시고" "알아주시는" 것이 얼마나 있을 수 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모든 지식이 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어도 결코 그치지 않는 것은, 아니 천국에서도 영원히 지속될 우리의 "일"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일이다. 그일은 영원을 지속한다 하더라도 결코 끝이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사실 시편 144편은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한 시편은 "여호와는 나의 인자(lovingkindness)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 가운데서 경험한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고백인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난 모든 인간은, 그 앞에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본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런 성스러운 조우(holy encountering)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 조우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수가 없다. 그분 앞에 늘 엎드리며, 그분의 은혜와 긍휼만을 구할 뿐이다. 그분께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내세우지 않고, 그분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주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대적을 흩으시며 파하시는 장수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환란 가운데서 나를 구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인 것이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목소리 높여 외친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아는 진정한 지식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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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내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분향으로 받아 주시고, 손을 위로 들고서 드리는 기도는 저녁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주십시오. 의인이 사랑의 매로 나를 쳐서, 나를 꾸짖게 해주시고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시 141:2-5, 표준새번역)

내 삶이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서 분향과 제물로 열납하실 수 있는 그런 삶이 된다면...
주님께서 악한 입술을 제어하시고, 친히 문지기가 되어 주시는 그런 복을 누린다면...
악을 향해 끊임없이 반응하고 이끌리는 내 마음을 주님께서 지켜주신다면...
악한 세상 가운데서 악인들 가운데 살더라도 그들과 함께 악을 도모하지 않도록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는다면...
부정의 축재에 참여하여 그들과 진수성찬을 먹기보다 깨끗함으로 가난함 굶주림을 오히려 즐거워 할 수 있다면...
동역자가 있어 나를 의의 매로 영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며, 부지불식간이나 의식적으로 짓는 죄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 내 마음을 찢는 꾸짖음을 듣는 크나큰 복을 누린다면...
죄악과 부정을 일삼는 자들에게 대접할 가치가 없는 자, 대접이 통하지 않는 자로 여겨진다면...
세상의 악을 보면서 그들의 악에 분노하면서 정작 그 악을 내 안에 내면화함으로써 그들과 동류가 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작 내 삶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너무나 더럽고 역겨우며, (마음의) 입술에는 언제나 독이 가득하고, (마음으로는) 세상의 악인과 함께 악을 도모하며, 가난을 두려워하고 잘먹과 잘 살고자 하는 욕구가 마음 가운데서 치솟고, 동역자들의 사랑의 매와 꾸짖음에 분노하며, 죄인들과 악인들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남의 악을 꾸짖고 분노하면서 정작 내가 그들과 똑같은 악을 범하는.... 천하에 흉악한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닌가?


다윗의 기도... 감히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기도이지만, 이런 흉악한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그 죄를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나 대신 죽으신 내 주인이고 내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분 때문에 (덕분에) 용기를 내어 이 벌레만도 못한 나를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감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고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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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지난 주에 구청에서 공짜로 영화 한 편을 봤다. 약 14-5년만에 영화관 같은 곳에서 본 첫 영화...
<<건축학개론>>

비록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진, 남성의 첫사랑의 판타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였지만,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스토리와 상징과 절제가 절묘하게 이루어진 참 좋은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나도 절제하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은 첫사랑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함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나는 왜 가슴이 먹먹했을까? 첫사랑과 결혼해서 함께 살면서 매일 보고 있는데...
내 생각에 그 먹먹함이란, 단순히 첫사랑의 기억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90년대 초반을 대학생으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노스텔지어... 영화의 세세한 소품에 배여있는 90년대 초반의 분위기에 지극히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시절에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철없고, 순수하고, 서툴렀던 자신의 지나간 과거의 모습에 대한 향수. 그것이 바로 그 "먹먹함"의 원인이리라.

영화의 주제곡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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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why worry?

딸내미가 이메일로 보내준 그림..


가장 중요한 것...

최근에 트위터에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다른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과 하나님을 소유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없다."라고 C. S. 루이스가 말했다는 것을 읽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하나님이 전부이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피부에 와 닿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유한 주님. 주님의 소유가 된 나.
그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자주 잊는다. 세상이 커보이고, 내가 가진 주님은 작아 보인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거기에 생명이 있어보인다. 반면 주님은 내 관심 밖으로 사라져 간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뿌리깊은 죄성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주님의 가치를 축소시키고, 내 일상의 밖으로 밀어내려는 경향...

루이스의 한 마디는 나로 하여금 주님의 위대하심, 모든 것 되심을 다시 한 번 스스로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주님이 전부이다. 그분을 소유하고, 그분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흔들림이 없이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의 크신 능력을 믿고 잠잠하게 있는 것이 이 세상을 진정으로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다. 그분 바깥의 세상에서 풍랑이 일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삼킬 듯이 나에게 다가오건 상관 없이...

주님 때문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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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하나...

무신론자가 되기에 자신은 너무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Ravi Zacharias...
그의 말에 100% 동감한다.

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은 수 많은 질문들에 대해서 덮어두고 넘어간다는 것이고, 그러는 가운데 생을 유지하는 것은 가히 엄청난 믿음을 필요로한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가?
선과 악,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등의 "가치"는 어디에 그 근원을 두어야 하는가? 왜 어떤 것을 옳고 어떤 것을 옳지 않은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간이 짐승보다, 혹은 아메바나 바이러스나 해충보다 더 고귀하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등등등...

수 많은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회피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믿음을 수반하는 것이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아무리 내 자신에게 정직하게 되물어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가운데 그에게서 모든 문제들의 확실한 답을 찾는 것이 훨씬 믿음이 덜 필요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다.

니체 이후 신을 제거한 세상은, 하나님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 세상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난파선과 같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딱 그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믿는 자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이 더 큰 믿음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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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이란? (이영표 선수 인터뷰 기사 중에서)

이영표 선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축구선수의 정신력에 대한 정의이다.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 섰을 때나 혹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앞두고 밀려오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약한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경기장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또 졌을 때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묵묵히 이겨내는 것, 이겼을 때 쏟아지는 칭찬을 가려서 들을 줄 아는 것도 모두 멘탈에 속한다. 심지어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이 곧 경기장 안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멘탈이다. 그렇기에 멘탈은 경기 당일 날 "한번 해보자!" 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멘탈은 훈련장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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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 Holy Nation" (레위기 10장)

오스틴에 있는 High Pointe Baptist Church의 Juan Sanchez 목사님의 설교

거룩함, 순종, 참된 그리스도인의 지표에 대해서 참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는 설교말씀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약간 길지만 꼭 들어 보시길...

http://www.highpointeaustin.org/archives/sermons/a-holy-nation-leviticu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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