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광주에서 태어나서 광주에서 자란 나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정치인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당시 "선생"의 연설 테이프가 돌아 다녔다. 그 연설은 민주화에 대한 정치연설이었는데, 지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끔씩 그 연설테이프를 아버지와 함께 들었다. 내 아버지와 광주에 있는 대부분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그 연설에 매료되었고, 그분을 항상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매우 슬퍼하고 계셨고 눈물을 흘리셨지만, 나는 그 소식에 매우 기뻐했다. 없어져야할 독재자가 사라졌다는 것과 이제 민주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4학년 짜리가 뭘 알았길래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말 사실이었다.

1980년 초 TV에서는 머리가 벗겨진 군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그 이름은 전두환. 그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적개심이 내 안에 가득했고, 그 사람이 더 이상 TV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그 사람에 대해서 대놓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 해 4월과 5월의 광주는 매우 어수선했다. 광주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모이며 "전두환이 물러가라. 김대중선생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그것이 데모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하지만 리듬을 만들어 노래로 부르는 구호를 나도 따라 외치며, 김대중 "선생"에 대한 희망과 마음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1980년 5월 18일... 학교에 군인 아저씨들이 들이 닥치고, 학교를 장악했다. 아저씨들은 무서운 눈초리로 초등학교 학생들을 노려봤고, 우리는 그들을 무서워 했다. 늘 연말이면 위문편지를 쓰던 그 "국군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었다. 며칠 후 학교는 폐쇄되었다.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던 작은형은 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고 투덜댔다. TV는 나오지 않고, 많은 경우 전기도 끊겼다. 밤이면 총알이 날라와 박히는 소리에 두려워 떨었다. 전남 도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던 우리 가족은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있었다. 어느 날 무서운 군인들이 물러가고, 시민 데모부대가 광주를 장악했다. 내 인생에 그 때처럼 평화와 나눔과 섬김이 충만했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동네의 가게들은 무료로 물품들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필요한 만큼 외에 더 가져가는 자들이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조직하여 주먹밥을 만들어서 데모군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 중에 우리 어머니도 계셨다. 경찰이 필요 없을 정도로 치안 유지가 잘 되었고, 곳곳에서는 북한 간첩으로 보이는 자들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는 소문도 들렸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공수부대는 다시 들이닥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너무나 많은 피가 희생되었고, 수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르게 군인들에 의해 처리되었다. 그렇게 5.18은 끝이 났다.
개학하고 학교를 갔다. 거기에는 다시 무서운 얼굴로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는 군인 아저씨들이 있었고, 온 광주는 패배의 아픔, 그리고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팽배해 있었다. 도청 근처를 다녀온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셨다. 수 없이 늘어 있는 관들... 그리고 그 중 한 젊은 처녀의 죽음에 어머님은 몸서리를 치셨다. 양 가슴이 잘려나가 죽은 그 젊은 여인. 그래서 그 잘려나간 그 가슴이 부어 올라서 관을 닫을 수가 없었던 그 시신을 직접 보고 오신 어머니는 그 비극에 오열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그 어머니의 오열과, 그 비극적 여인의 시신과,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의 이미지가 늘 오버랩이 되었다.
그 때, 조국의 희망은 세 명의 김씨들, 특별히 김대중, 김영삼 두 명의 민주화의 화신들에게 있었다. 1987년 고 3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친구이자 5.18 책임자 중의 한 명인 노태우와 야권 통합에 실패한 김영삼, 김대중 세 명의 싸움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대중씨로 야권이 통합되어야 했지만, 당시 야권은 김영삼씨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 했고, 김대중씨가 거기에 불복하면서 삼파전이 되었다. 내가 김대중씨에 대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 때 김대중씨가 야권 통합에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김영삼씨를 밀었다면 정권은 그 때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쨋든 결과는 양김의 패배와 노태우씨의 당선이었다. 그 결과가 발표된 그날 새벽 첫 차를 타고 학교로 공부하러 가던 버스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버스 안은 매우 조용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라디오조차 꺼져 있었다. 광주의 모든 사람들이 비통함과 패배감과 자괴감 속에 괴로와 했다.

5년 뒤... 1992년(혹은 1993년?) 또 한 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제는 호랑이를 잡으로 여권으로 들어간다는 김영삼은 반민주화 세력인 민자당과 야합을 하고, 거기에 맞서 김대중선생은 야권의 후보로 나왔다. 당시 포철 회장을 역임한 박태준씨와 김종필씨도 후보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김대중씨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당시 영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조국을 위해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랬다.(그 때는 영접만 했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때라서 내 맘대로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기대했었다.) 광주에서 99%의 지지가 있었고, 전남에서 95%의 몰표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 결과는 김영삼의 당선... 그 해 그 겨울에 나는 교회와 선교단체 예배를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정치에 대한 환멸로 몇 주간 하숙집 방에 처박혀 아무데도 나가지 못했다. 그 패배감과 사회정의와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의심, 반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4년 정도 지난 뒤... 나라는 IMF의 대환란을 맞아 무너졌다. 김영삼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서 너무나 위태위태하다는 마음 가운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무너진 것이었다. IMF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겪었고, 그로 인해 당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으로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 때의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확정 신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광주와 전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적임자가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니 가장 어려움 가운데 처해있는 바로 그 때에 당선이 되어 나라를 이끌 것이라는 것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대 했던 대로, 그 분은 IMF위기를 극복해 냈다. 비록 신용카드 정책이라는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큰 틀에 있어서는 경제를 회복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에 있어서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부분은 아직되 아쉽긴 하지만,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섬기는 자리라는 것,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정책을 추구했다는 면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던 분이었다. 외교, 특히 대북정책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가치로 인해서 남북화해를 이루었고,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루어 낸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이루지 못했던 권위주의 청산은 그 다음 정권인 노무현 정권을 통해서 달성이 되었다. 민주화의 화룡정점을 이룬 것이다.

김대중!
그는 나에게 있어서 정치였고, 민주화였고, 내 인생의 바른 가치관이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스승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선생님"이시다. 김대중 선생님.
천주교 신자인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그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하지만, 내 인생을 설명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큰 영향력을 끼친 한 인물이 서거하셨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오늘 그분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내 "선생"이신 김대중 대통령...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물8

(2005년 3월 1일에 쓴 글)

저녁에 하연이를 재우려고 하연이 침대에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하연이가 스무고개를 하자고 졸라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하는 그런 스무고개가 아니라 자기방식의 스무고개였다. 일종의 수수께끼...

"얼굴에 있어요... 좀 길어요.."

"눈썹!"

뭐.. 이런식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하연이..

"우리 가족 중에 있는데요.. 공룡보다 쪼~~오~~끔 작아요.. 으히히.."

"음... 아빠!"

"맞았어요.."

내가 공룡보다 쪼~~오~~끔 작다고? 음..

[펌] 기도...

래리 크랩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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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하듯 질주하는 삶의 속도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의 저변에 깔린 둔중한 무감각 때문에, 자신이 좀 더 나은 그 무엇을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당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허기져 있다. 그리고 당신은 알고 있다. 그 허기는 하나님한테 좀 더 많은 복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하나님 그분을 좀 더 잘 아는 것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확실히 알아듣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하게(closely) 연결되기를 당신은 간절히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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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하나님이 아신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George MacDonald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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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말하듯이, 하나님이 그렇게 좋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다면, 그것도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면, 왜 우리가 굳이 하나님께 그것을 간구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게 기도라는 걸 하나님이 아신다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목적이 우리의 그 크고 끝없는 필요--바로 하나님 자신--를 공급해 주는 거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밖에 나갔던 자식은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올 테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불리 먹을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저녁 식사가 아니라 엄마다. 한 영혼에게 그 무엇보다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기도는 그 연합의 시작이며, 우리의 필요는 그런 기도를 자극하는 동기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과의 대화,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시작하라.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유일한 목적이다.

Living in America as a Korean...

Today, the class that I'm TAing had the second exam. After that, the professor and I worked together to share same ground for the grading. We graded four exams separately, and compared them later. Except two cases, the gradings matched perfectly. The professor was much satisfied with that.
In doing it that, he and I talked about small personal things. Suddenly, he closed the door of his office where we were together, and began to talk lowering his voice. He is a senior white professor, and I felt there is no reason for him to talk to me like that. It was a little bit strange until I heard what he said.
He said that everyone in my department, not only professors, but also graduate students and the staff members, are concerned--or nervous--about my working as a TA. He said that they are keep talking about me, and that they continue to ask him if I am doing OK. He explained that because my department has never employed non-Americans and non-Europeans as TA before, everyone feel very awkward about it. The graduate adviser keeps asking him about my performance, the graduate coordinator whispers to him about me, and students keep talking negatively about me...
Essentially, what he wants to say was that he is the great supporter of me, and he is saying that he is perfectly satisfied with me. He even convinced the graduate adviser, the one who hires TAs, that I am a good TA. He said, "Even if someone cuts me in the back later, don't think I had a bad opinion about you. I'm doing my best to protect you." The fact that they are keep talking in my back means that I may not be hired in the Spring session, for which I am hired conditionally.

Even before he talked to me, I felt that every one in my department was watching over me. I knew that because, in my department, I'm the only one whose mother tongue is not English. In my major, English is the most important element, and even the American graduate students suffer from high pressure to speak and write "best English."
Living in America as a Non-English native speaker is living with a huge stigma on your forehead, "Inferiority." Particularly, in the department whose members are almost all American whites (95%), you are a second-class citizen with whom you never want to have close contact. I know that my case is extreme, but it's not abnormal. It's what most people from abroad, particularly those whose English is not as good as Americans, more or less, experience. It's America.

However, I'm not disappointed with that because I just don't care. I believe that it's not my department--not the graduate adviser--but God who had me work as a TA. It's not their decision, but God's. If God wants, then I can work. If He doesn't, then I can't. It's very simple. The hostile situation is nothing to me. It doesn't make me wavered.

But, still, it makes me feel bitter. I feel that I'm not in the right place...

[펌] Dear Pastor

Dear Pastor, I know God loves everybody but He never met my sister. Yours sincerely, Arnold. - Age 8, Nashville.

Dear Pastor, Please say in your sermon that Peter Peterson has been a good boy all week. I am Peter Peterson. Sincerely, Pete. - Age 9, Phoenix

Dear Pastor, My father should be a minister. Every day he gives us a sermon about something. Robert, - Age 11, Anderson

Dear Pastor, I'm sorry I can't leave more money in the plate, but my father didn't give me a raise in my allowance. Could you have a sermon about a raise in my allowance? Love, Patty. - Age 10, New Haven

Dear Pastor, My mother is very religious. She goes to play bingo at church every week even if she has a cold. Yours truly, Annette. - Age 9, Albany

Dear Pastor, I would like to go to heaven someday because I know my brother won't be there. Stephen. - Age 8, Chicago

Dear Pastor, I think a lot more people would come to your church if you moved it to Disneyland. Loreen. - Age 9. Tacoma

Dear Pastor, I liked your sermon where you said that good health is more important than money but I still want a raise in my allowance. Sincerely, Eleanor. - Age 12, Sarasota

[펌] Desparate Prayers

물론 명시적으로 이런 기도는 하지 않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고 기도하는 나의 기본 태도 속에서 이런 자세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실 때 얼마나 가증스러우실까?

Desperate Prayers

Lord help me to relax about insignificant details beginning at 7:41:23 am, e.s.t.
God help me to consider people's feelings, even if most of them ARE hypersensitive.
God help me to take responsibility for my own actions, even though they're usually NOT my fault.
God, help me to not try to RUN everything. But, if You need some help, please feel free to ASK me!
Lord, help me to be more laid back, and help me to do it EXACTLY right.
God help me to take things more seriously, especially laughter, parties, and dancing.
God give me patience, and I mean right NOW!
Lord help me not be a perfectionist. (Did I spell that correctly?)
God, help me to keep my mind on one th-(Look, a bird)-ing at a time.
God help me to do only what I can, and trust you for the rest. And would you mind putting that in writing?
Lord keep me open to other peoples' ideas, WRONG though they may be.
Lord help me be less independent, but let me do it my way.
Lord help me follow established procedures today. On second thought, I'll settle for a few minutes.
Lord help me to slowdownandnotrushthroughwhatIdo.

Amen

무제...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 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
아무 것도 찾을 수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 서른즈음에-

내가 UT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대 도서관의 넓은 창문으로 보이는 지는 태양을 보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생각났다. 내 나이 이미 40을 넘기고 있기 때문에 노래 가사와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그의 노래가 일면 공감이 간다.

이 땅에서의 내 생명, 하루 만큼의 생명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전에는 참 안타까왔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기쁘다. 그것은 내가 그 무엇,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분을 만나는, 그 때가 하루 만큼 더 가까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믿음의 동역자들... 잠시 함께 동역하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그리운 동지들을 거기에서는 분명히 만날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망한다.

The voice of God

The day before yesterday... Sunday at night, I was busy grading students' papers hearing CCM.
Suddenly, in the deepest of my heart, there was a voice. It was a clear voice that I can easily tell that it's not mine at all. It was God's, and He was commanding me to obey him.

My first reaction was rejection. Right, disobedience...
I DID NOT WANT TO OBEY GOD.
I hated to obey His command. He ordered the thing that I thought I will never do... I thought that there is no reason to do that. I complained that God is always unfair to me, and to me ONLY.

But soon, I said to myself "It's God command. How dare you to disobey Him?" That very simple question got me the feeble willingness to obey Him. But, then I felt my whole body is resisting. It just didn't want it. It hated it. At that moment, I understood why the Bible says: "For the flesh sets its desire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for these are in opposition to one another, so that you may not do the things that you please."(Galatians 5:17)

Happily, instead of being overwhelmed by the sinful nature of body which hates to obey God's command, I was able to mananage myself to do it. But, even then, I was reluctant, and I felt that I still don't want to do it. So I obeyed just half way. I just stopped in the middle. And resumed grading, and wanted to forget about it.

Then in a short while, the voice came back again, and this time it ordered the most difficult thing. I was angry at that. God, just leave me alone! Why are You bothering me? TOTALLY UNFAIR!!! I DON'T WANT TO DO IT!!! But surprisingly, this time, my body moved. I saw that once it had an experience of obedience, it was far easier next time. The Holy Spirit within me just led my body, and it completely obeyed His command.

It was disaster personally. I did the thing that I hated to do. I lost. I'm nothing...

But it was right after the unwilling obedience that I felt the scales slipped away that had been blocking my spiritual eyes to see the things that I had not seen: my arrogance and sin. I thought that I've always been very sensitive to my own sins, which is not totally untrue. But I realized that, in my heart, I had had a shaded area that the light of the God didn't reach.

God wanted me to see it. He wanted to shed light on it. He waited for quite a long time for it, and in His time, He interrupted my life and literally TOLD me to obey His command. My action was very simple and it wasn't not his major interest. It way the act of obedience that He wanted. And the obedience removed the scales, and as a result, I was able to see and become humble.

It was a wonderful experience. God simply said a couple of things, and when I obeyed, my life has changed. The great change came simply from the obedience to God.

무제

어제 저녁에는 한국 음악이 많이 그리워졌다. 거의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한국이 그리워졌는지... 그냥 듣고 싶었다... 그래서 Youtube에서 찾아서 노트북에 저장해 두었던 음악들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들었다.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는지, 이제는 흘러간 옛노래에 해당하는 음악들에 마음이 끌렸다. 이 음악을 듣던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냥 음악을 들으며 예전 그 시절로 잠시 추억에 잠겨 여행을 다녀왔다.


양희은-아침이슬
예민-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서울대 트리오-젊은 연인들
강인원, 권인하, 김혀식-비오는 날의 수채화
김광석-거리에서, 그녀가 처음울던 날,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타는 목마름으로,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정태춘-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조동진-나뭇잎 사이로
조정희-참새와 허수아비
조하문-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푸른하는-겨울바다
피노키오-사랑과 우정사이
해바라기-사랑으로
햇빛촌-유리창엔 비
김현식-내 사랑 내 곁에
둘다섯-밤배
박인희-모닥불 피워 놓고
박인희-방랑자
배따라기-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비와 찻잔 사이
소리새-그대 그리고 나
송창식-우리는
신형원-개똥벌레
썰물-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안치환-마른 잎 다시 살아나,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귀뚜라미, 어느 별에서, 찔레꽃, 자유
N.EX.T-인형의 기사


안치환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저항성의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도전을 받는다. 식지 않은 열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노래하는 그보다는 최소한 더 큰 열정,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이 나에게 있어야 함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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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노래들 순위 (나도 어쩔 수 없는 운동권 세대인 386 세대인가 보다...)
1. 안치환-광야에서
2. 안치환-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3. 정태춘-떠나가는 배
4. 푸른하는-겨울바다
5. 정태춘, 박은옥-사랑하는 이에게
6. 양희은-아침이슬
7. 강인원, 권인하, 김혀식-비오는 날의 수채화
8. 김광석-거리에서
9. 박인희-모닥불 피워놓고
10. 썰물-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보물 7

(2005년 2월 23일에 쓴 글)

둘째인 예연이랑 놀고 있었다.
블록 놀이를 하면서...
요즘 예연이는 블록 놀이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잘 놀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자기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아무 말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잠시후...
방에서 걸어오는 예연이의 표정은 밝았다.
얼굴에 웃음을 띄며 큰 소리로 씩씩하게 물었다.

"아빠! 방구소리 들렸쩌요?"

여성들의 옷차림

요즘 오스틴의 한 낮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는 날이 많아졌다. 덥긴 참 덥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와 상관 없이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UT의 여학생들의 옷차림이 너무나 "간소"한 것을 본다. 솔직한 마음으로 말하자면,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가 혼동이 될 정도인 경우도 흔하다.

한창 젊은 나이,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울 때,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든 건가? 아름답고 예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라나고 있는 내 딸들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닐까봐 걱정이 많이 된다. 이제는 캠퍼스의 여학생들을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볼 나이가 되었나보다... '내 딸들이 저런 것을 안 배웠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 밖에는 안든다. 나중에 캠퍼스의 학생들을 보면서 손자를 생각할 나이가 되면 그것을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참 안타까울 뿐이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효경)

우리의 몸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고 아끼고 가꾸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도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가꾼다"는 것이 과도하게 "sexuality appeal"에 치중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은 성경을 비추어볼 때 분명한 사실이다.

자신의 몸을 단정하고 우아한 옷으로 가리면서도 맵시를 드러내는 옛스러운 멋이 무척 그립다.

공동체에 대한 사탄의 공격

요즘 내가 섬기는 청년부를 향한 사탄의 파상공격을 본다. 3년이 약간 못되는 시간 동안 부장으로 섬기면서 사탄은 지속적으로 우리 공동체를 공격해 왔지만, 지난 두 달 정도처럼 내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심각하게 공격을 해 온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막아야 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사탄은 공격을 한다. 청년부의 리더들을 공격해서 섬김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고, 지체들을 속여서 믿음 가운데 나아오지 못하게 막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반목과 질시와 상처가 난무하게 하고, "바쁜 일들"과 바뀌는 멤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일들이 진행되지 않고, 복음에 대한 열정은 식어지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특별히 리더인 나와 내 가정을 공격함으로써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사실 이런 사탄의 활발한 공격은 청년부의 대부분의 지체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심지어 영적인 리더들인 목자들조차도 부분적으로는 느낄지 모르지만, 그 규모와 심각성에 대해서는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영적인 리더로서, 우리 모임의 진정한 리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하는 나로서는, 사탄의 공격에도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사탄은 믿음의 공동체를 절대 그대로 두지 않는다.

사탄이 이번 여름에 왜 이렇게도 발악을 하면서 우리 공동체를 흔들어서 무너뜨리려고 할까? 무시무시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사탄의 공세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난감함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기대감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무슨 역사를 시작하려고 하시는 것인지... 사탄은 미리 그것을 알고 그 은혜가 우리 공동체에 임하기 전에 공동체가 지리멸렬하게 무너지도록 하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 사탄의 공격도 그만큼 더 해지는 것은 믿음 생활을 통해서 늘 경험해 왔던 것이다. 사탄이 이렇게도 날뛰는 것을 보면서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하나님께서 가을 학기에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시려나?'
'이번 여름 수련회가 은혜가 충만한 수련회가 될건가?'
'하나님 안에서 귀하게 쓰일 한 영혼이 곧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믿음을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려나?'
생각만해도 즐거운 상상이다... 그래서 날뛰는 사탄을 보면서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과 날뛰고 있는 사탄을 대적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토록 파상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사탄에 대해서 이 공동체를 섬기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사실 많은 고민이 된다. 하지만 그 결론을 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물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회의를 통해서 사탄에 대해서 맞서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사탄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히려 그런 노력들은 사탄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러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약 4:7)
어떤 학자들은 이 본문을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서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에 반대한다. 오히려 악마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맞다고 본다.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세 번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당신께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심으로, 그리고 그 말씀만이 진리임을 선포함으로 사탄을 물리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이 극한의 상황에서 파상공격을 가하던 사탄으로 하여금 물러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해야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으며, 그분의 온전한 하나님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더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그분께 기도로 매달리는 것이다.그것이 사탄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공격이다. 사탄이 아무리 두렵게 나를 공격해 오고, 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더라도, 내가,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 복종하기로 사생결단을 내린다면, 사탄은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결국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분의 넓은 품에 더 가까이 파고드는 것 밖에는...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분이 하실 위대한 일을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 밖에는...

사탄의 공격... 주님 안에서는 그것마저 은혜다.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거듭남을 경험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양자로 입양된다. 창조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특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공의로우신 성품, 그리고 그분의 사랑받는 자로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 그분께 다시 반역으로 나아갈 때,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나를 그냥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나를 징계하신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아무리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채찍이라 할지라도, 그 징계는 고통스럽다. 때로는 그것이 죽을 것 같은 고통, 극심한 고통이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나고 생각될 정도로...

나는 최근에 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있는 것인지를 묵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나에게는 내가 죽는 고통, 아니 한 번 죽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죽음을 맛보는 고통이 있었다. 어느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그 고통의 원인이 10년이 훨씬 넘은 옛날에 지었던 죄와 약 6년 전에 지었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았다. 그 죄에 대해서 나는 회개를 했지만 그 죄의 결과를 지금 물으시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죄로부터 아직 완전하게 돌이키지 못했음을 그 징계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아직 더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할 것들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셨다. 나의 내면 깊숙이 박혀 있어서 어지간 해서는 절대로 드러날 수 없는 근본적인 죄악을 그 채찍질을 통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하시고, 내 스스로도 속아서 처리된 것으로 여겼던 그 죄악들을 드러내시면서 나에게 보다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 하나님의 채찍--아직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징계이지만--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그 채찍에 묻어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을 읽게 된다. 이제는 나에게 가해지는 그 고통보다도 그 매를 드셔야 했던 내 아버지의 마음, 그 찢어지는 아픔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매를 드셔야 했던 내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그 전에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비밀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쓰셔야 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 자리에서는, 예전에는 그냥 넘어 갔던 그 죄들을 가지고는 더 이상 쓰실 수 없기 때문에, 나를 더 은혜의 자리로, 성숙의 자리로 인도하셔야 했기 때문에, 나를 향하여 그렇게 뒤늦은 이 때에 채찍을 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채찍을 통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느낄 때, 그 채찍은 아프긴 하지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채찍을 통해 내 죄악된 자아가 죽어가며, 반면에 내 안에서 영적인 새 살들이 돋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신비이고, 환희이고, 감격이다.

나를 징계하시는 나의 아버지... 나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감사... 감사... 감사... 그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렘 11:7-8, 18)

내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잠잠하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내가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 그렇게 느낄 뿐이지, 그분은 나를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심으로 내가 죄의 길에서 떠나서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때로는 그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죄를 계속 짓는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음성을 분명히 듣고 있고, 심지어 그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내리실 징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짓기를 지속하고 감행한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믿는 사람인가 스스로 의심할 정도이다. 죄악으로 인해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분이 나의 왕이요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했던 고백은 온 데 간 데 없고, 죄악에 완전히 사로잡힌 자아만 있을 뿐이다.

후에... 내가 행했던 죄악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회와 그 죄악으로 인해 내 삶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죄악의 결과로 주어지는 고통 가운데 신음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묻지 않으시지만, 그 죄악의 결과까지 항상 없애 주시는 것은 아니다. 마치 밧새바와 간음한 다윗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지만, 그 아들을 데려가시는 고통마저 없애지 않으시는 것처럼, 죄악은 반드시 고통스러운 결과를 나에게 가져다 주는데, 그것까지 하나님께서 항상 없애 주시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하나님 안에서는 그것조차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능력 아래 있다.)

죄악으로 인해서 스스로 자초한 고통을 당하며 그 죄악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밀려오는 회한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회개하지 못한다. 회개는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복된 것, 내 삶에 늘 있기를 간구하는 것은 죄악을 짓는 그 순간, 혹은 그 직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죄악에 머물지 않고, 혹은 그 죄악을 저지르기 전에 그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미리 아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강권하셔서 내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악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복된 회개라고 생각한다. 그런 회개가 내게 있다면, 나는 늘 하나님 안에서 그분을 모시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뒤늦은 후회는 없는 것보다는 좋지만, 그 후회 자체를 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삶이고, 복된 삶이라는 것을... 요즘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보물 6

(2005년 1월 31일에 쓴 글)

토요일 오전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날이다. 주로 집에서 애들 밥먹이고 애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다.

지난 토요일은 날씨가 쌀쌀하고 비도 약간 와서 집안에서 주로 놀았다. 하연이 예연이와 함께 어린이 디즈니 채널을 같이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만화영화를 하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있었다.

미국 TV는 의례 그렇듯이 약 10분 정도의 방영 후에 광고가 나간다.

한참을 몰입하고 있던 하연이가 광고가 시작되자 눈을 내게로 돌렸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

"아빠! 만화영화 하다가 왜 광고가 나오는지 알아요?"

"...... 글쎄... 왜 그럴까?"

"그건 말이예요... 아직 만화가 덜 그려저서 그릴 시간이 필요해서예요. 광고 나가는 도중에 열심히 그리고 있을거예요..."

나의 명령을 청종하라...

(2004년 10월 28일에 쓴 글)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명기 11:13-15)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명령을 청종하라'고 명하신다. 신명기 10:13 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명령과 규례...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제한하시기 위해서, 즉 통제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보살피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명령과 규례를 허락하신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 당신께서는 내 자신보다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고 계신다. 때로는 나의 무지로 인해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인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내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필요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하나의 굴레로 여기거나 기독교라는 종교의 편협한 자기 중심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어길 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들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자연스럽게 그런 상태에 내 몰리는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지우는 벌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 나무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을 때, 그 가지는 자연스럽게 말라버리고 종국에는 불에 태워지거나 썩어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무가 가지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초래되는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가지인 우리를 나무에 붙어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께 붙어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그분만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의 위험

현대 기독교인들의 특징은 아무 생각이 없이 산다는 것이다. 교회에 오래 다니지만, 성경 내용도 잘 모르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교리가 무엇인지, 심지어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믿음의 선배들이 본다면 가슴을 치며 아파할 모습이 현재 교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에 바알에 무릎꿇지 않은 칠천명을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던 것처럼,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바른 믿음과 교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하고 연구하면서,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으로 가꾸어 가려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요구사항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두신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꾸준한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고,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빠질 위험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속좁고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인이 될 위험이다. 그것은 복음에 대해서, 바른 믿음에 대해서 더 연구하면 할수록, "가짜"들에 눈에 들어오고, 그 가운데 "진짜" 믿음/신앙을 추구해 나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몸에 배는 습성이다.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현대 기독교가 얼마나 성경에서 멀어졌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참으로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값 없이 은혜로 주어진 복음이 싸구려 취급을 받고,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은 안중에도 없으며, 하나님이 산타클로스나 알라딘의 램프의 거인 혹은 내가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아침마다 정화수에 물떠놓고 기도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절대자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따르는 모습을 찾기가 힘든 이 세상에서 바른 믿음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충격적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방어적이며, 나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물론 그런 태도가 늘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경적으로 결코 옳지 않은 믿음을 가진 교인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같은 믿음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가짜들과 싸워야 하고, 교회 내에 이미 너무 많이 들어온 세속주의와 물신주의의 우상숭배를 배척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 거룩한 믿음을 외쳐야 한다.
하지만 교왕과정(矯枉過正)의 오류를 우리 마음에 꼭 새겨야 한다. "바른" 믿음이 좋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추구하다보면, 나만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착각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라고 착각하게 된다. 바른 신앙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믿음 안에서의 (바르지만) 다양한 모습을 포용할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의한 바리새인의 끔찍한 오류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바른 믿음에 관심이 없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죄악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나라의 속담은 참으로 귀한 진리이다.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알면 알수록, 나는 겸손하게 된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해서 겸손하게 되고, 둘째 믿음의 동지들에 대해서 겸손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다양성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가지게 된다. 성경이 보여주는 "바른" 믿음에 대해서 날이 갈수록 더 분명하게 깨닫는 반면, 그 믿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된다. 나와 다른 이해를 가진 믿음의 사람들을 "이단"이나 "마귀의 속임에 놀아난 자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더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르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고후 13:5)
내가 바른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점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믿음 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내리는 (정죄가 아닌) 판단들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판단이 아니라 정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해 봐야 한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그 일들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여과없이 비판해 줄 수 있는 믿음의 선배들, 믿음의 동역자들을 늘 곁에 두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믿음생활이나 내 의견을 가감없이 비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늘 곁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비판이 나를 깨어나게 하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든다.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단으로 미혹되어 나간 사람들의 공동적인 특징은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결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귀는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이단에서 돌이킬 가능성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믿음의 열정이 겸손과 함께 가지 않는다면, 그 열정은 상처와 분열과 파괴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마귀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열정은 반드시 겸손과 함께한다.

Q.T.

매일 아침(되도록이면 아침 혹은 내가 일과를 시작하는 때)에 나는 컴퓨터를 켠다. 뉴스를 통해 세상소식을 알고 싶은 마음도 많고, 나에게 무슨 이메일이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유혹을 뒤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메일(매일 QT 본문)을 가장 먼저 읽는다.
그 이메일은 때로는 위로의 말씀, 때로는 징계와 경고의 말씀, 때로는 해독이 필요한 암호문, 때로는 비유, 때로는 직접 들려주시는 음성, 때로는 시 한 편, 때로는 드라마, 때로는 역사 등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매일 이메일은 나에게 보내 주신다.
그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지를 가장 분명하게 체크할 수 있다. 이메일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지 간에 그 이메일을 받는 것이 기쁘고 기다려진다면, 나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반면 내 마음이 냉랭하거나 귀찮거나, 아니면 이메일을 열어보기도 싫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이메일을 보내셔서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이메일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오늘은 "붙좇았더라"라는 단 한 마디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모두 담아 두셨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나에게는 그 한 마디의 말씀만이 내가 내 삶에 실행에 옮겨야할 그 무엇으로 판단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한 마디로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하시고, 내 삶의 근본 질문을 불식시키신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을 요구하신다.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본부로부터 스파이에게 내려진 "지령"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앞뒤 맥락 없이, 의문의 여지도 없이 나는 그 한 단어를 실행에 옮기기를 명령받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작다. 하지만 본부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조율하고 계시다. 나는 그 한 지령을 실행에 옮기면 될 뿐이다.

하나님은 참... 재미 있으신 분이다.

민족들을 진멸하라...

(2004년 10월 23일 쓴 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신명기 7:16)

하나님은 신명기 7장 12절부터 26절의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면 복이 있을 것이고, 자신보다 큰 민족들을 멸하고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으로 보이지만 가나안의 민족들에게는 재앙의 말씀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편애하시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재앙을 가져오는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신으로 보일만도 하다. 과연 그럴까?

우선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빛이 어두움과 함께 할 수 없듯이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이다. 하나님 편에서 진노하셔서 죄를 멸하시기 이전에 죄는 하나님 앞에서 그 존재를 상실해 버리게 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심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 사랑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 참을 수 없는 죄악에 빠져있는 인간들을 오래 참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딜레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나안의 민족들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일반계시(로마서 1장)에도 불구하고 끊이없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만든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그 정도는 지금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심지어 자신의 첫아들을 죽여서 자신의 신에게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잔인함과 죄성을 온 땅에 편만해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민족들을 오랫동안 참으셨지만 이제는 심판의 때가 온 것이다. 그 도구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시는 것 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호렙산에 머물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한 나머지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자신의 신으로 삼고 그 앞에 절하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완전히 이 땅에서 없애버릴 생각을 하셨다. 이스라엘이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다만 이 때,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모세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갈 수 있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에 자신의 장막 밖에서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알아보았고, 그들을 장막으로 인도하여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 와중에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가고 있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 두 도시는 당시에 그 일대에서 가장 풍요하고 가장 큰 성읍들이었다.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벗어났고, 따라서 사자들로 하여금 불과 유황으로 그 두 도시를 진멸하시기로 한 것이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어찌하든 그 것을 막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와 흥정을 시작한다. "만약 그 도시에 50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래도 그 도시를 멸하시겠습니까?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사자들은 "50명이 있다면 멸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협상을 계속하여 결국 10인의 의인이 있다면 그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 두 사자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갔고, 거기서 의인은 단 한사람, 아브라함의 조카 롯 뿐인 것을 보고 롯을 구해낸 다음 그 두 도시를 멸망시키셨다.

만약 가나안에 하나님 앞에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