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 이어서 계속)
그가 링에 공을 밀어 넣는 기술을 가지고 6천만불을 벌게 된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으면 거기에는 시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시장의 수요량과 공급량의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면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의 가격을 결정한다. 그 가격이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희소성이 있으면 가치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희소성이 없으면 가치는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희소한 것이라도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은 높아질 수 없다.
언뜻 보기에 매우 공정해 보이고, 객관적으로 한 물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잘 반영할 것 같은 시장 메커니즘은 사실 반드시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의 시장을 지배했던 거대 자본을 통한 독과점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수요의 창출을 조작 혹은 그 수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시장이 공정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농구의 예를 든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농구는 하나의 공을 동그란 링 안에 넣는 게임이다. 그것이 게임이기 때문에 자체의 룰이 있고, 그 룰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 링 안에 공이 들어갈 때 점수를 얻는 것이 농구의 가장 기초적인 fact이다. 그렇다면 링 안에 공이 들어가는 것의 가치는 얼마인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링 안에 공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진 그 능력의 가치는 얼마인가? 그리고 그것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누가 정하는가? 누가 그 능력을 소비하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마이클 조던이 공을 링에 집어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3천만불의 연봉을 받았다. 그의 능력은 1년간 시카고 불스라는 구단에 rent가 된 것이고, 그 구단은 그것을 위해 그 많은 액수를 지불한다. 그 구단이 그 액수를 지불할 수 있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이익을 그 능력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관중 수입, 광고수입, 방송료, 구단관계 물품들(유니폼, 모자 등등)의 판매 등에서 그것이 나온다. 계산은 간단하다. 스타 플레이어가 있고, 승률이 높고, 박진감 있는 경기가 있으면 그 모든 수입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마이클 조던은 이를 위해 딱 맞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액수를 주고서라도 그 능력을 rent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농구를 매우 잘하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사람과 그의 능력이 구단에서 원하는 수입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농구를 탁월하게 잘하는 능력을 소유한 것과 막대한 돈을 버는 것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 많은 것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마케팅이 그 하나이고, PR을 통한 이미지 관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은 일종의 "신화화"이다. 다시 말하면, 마이클 조던에 대한 (반드시 fiction만은 아니지만..) 신화적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신화화는 "영웅화"와 일맥 상통한다. 마이클 조던이 단순히 공을 던져서 링 안에 그 공을 집어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한 인간이 아니라 위대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 신비적 존재, 신화적 존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한 게임에 불과한 농구는 이제 피튀기는 "전투"가 되고, 거기에서 일어난 동작들에 의미가 더해지기 시작하며(스포츠 해설) 뒷얘기들이 생성되어가고, 그것을 통해서 위대한 인물, 위대한 영웅 "마이클 조던"이 탄생한다. 옛날에는 위대한 장수들에게 갔던 존경과 찬사가, 전쟁이 사라지고, 컴퓨터 게임화되고, 일상에서부터는 멀어져버린 일부 선진 자본국가에서는 일종의 "싸움"인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에게 돌아간다. 스포츠를 설명하고 기술할 때 쓰이는 많은 용어들이 전쟁 용어임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 인물이 영웅화 되어가고, 거기에 의미들이 더 덧붙여지고, 그것에 의해서 수요는 조작되어간다. 그런 작업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은 바로 거대자본이다. 거대자본은 그 자본들을 통해 manipulation작업에 들어가고, 그 수요를 조작하는 작업은 "항상" 자신의 몸집을 더 크게 불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간다. 물론 모든 소비주체들이 아무런 생각이나 저항 없이 그 조작에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들의 소비 패턴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대 자본의 "조작"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조작들을 통해서 판이 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먹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농구라는 게임이 신화화 되고, 마이클 조던이 수퍼스타로 부상함에 따라서 소비가 증가하게 되고, 그 판에 뛰어든 모든 기업이나 개인들은 그것을 통해서 생활응 영위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그리고 바로 이런 재미없는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가치가 정말로 정당한 가치인가이다. 마이클 조던이 공을 링에 넣는 기술을 가진 것이 6천만불의 가치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논리에서(자본주의적 시장 논리) 본다면 분명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논리가 항상 옳은지, 그리고 항상 최선인지를 묻는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아침 일찍 사람들이 드문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청소부의 일을 생각해 보자. 그의 청소하는 노동과 마이클 조던이 링에 공을 넣는 "노동"을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는가? 밤새 지저분해진 그 거리를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흘리는 한 청소부의 땀방울과 농구대에 공을 밀어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흘리는 마이클 조던의 땀방울의 가치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청소부가 시간당 10불씩 받고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한다고 했을 때 버는 돈은 일년에 2만불 정도... 그렇다면 그들의 가치가 3천배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논리를 떠나서, 아침을 깨끗하게 여는 청소부의 노동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농구 공을 동그란 rim에 집어 넣은 마이클 조던의 노동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3천배의 차이가 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분명 청소부의 노동이 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가치를 3배, 30십배 혹은 300배가 아닌 3천배의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자본주의는 과연 올바른 것인가? 제로섬 게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한한 자원을 가진 이 지구에서 소수가 그렇게 과도하게 자원을 독식하는 것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세상의 모습일까? 그것이 정당한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지만, 뛰어나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걱정없이 살만 한 그런 시스템은 없을까? 능력 없는 사람들도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것이 내가 평생 고민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고민만 하지 않을까?
(참고로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두지만, 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둘은 낭만주의의 소산이며, 그 시스템들은 근본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 두 시스템의 기본 가정이 "인간은 선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인간은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낭만적인 이상주의로 접근했을 때 자본주의보다 더 처절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제도들이다.)